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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로 다시 성장 기적을 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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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챗GPT 시대의 생존 전략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꿈속에서는 너의 얼굴을 볼 거야/그 특별한 곳에서 너를 감싸려/지금은 안녕을 표해야 하지만/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야.” 이 노래의 작사가는 누굴까? 인공지능(AI) 챗GPT이다. 필자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관한 노래 가사를 써 달라’고 요청하자마자 1절, 2절과 후렴이 있는 긴 노래 가사를 이 AI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낸 것이다.

노래방에서 자기 노래가 불릴 때마다 수입을 얻는 작사가를 꿈꾸었던 사람에게만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간단한 수준의 논문도 시도 쓸 수 있다. 인간 지식노동의 거의 전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AI가 이제 자신의 위대함을 막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AI 알파고가 이세돌 구단을 물리칠 때만 해도 자신의 직업에 위협을 못 느꼈던 많은 국민도 이제는 더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인식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가공할 만큼 위협적인 AI와 경쟁해야 하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은,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챗GPT 등 AI, 인간 지식노동 대체
창의적 아이디어가 최후의 보루

일정기간 소유권과 인센티브 주는
아이디어 재산권 보장 제도 도입

다수 참여하면 ‘대수의 법칙’ 작동
정책·금융·창업부터 시범실시를


이 시대 최고 생산요소는 창의적 아이디어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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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핵심적인 생산요소가 있다. 산업화 이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인간의 육체노동이 가장 중요했다. 1700년대 말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동력기관 혹은 운송기관처럼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기계가 중요한 생산요소로 떠올랐다. 이후 기계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인간의 지식노동이 핵심적 생산요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기존 지식의 끝판왕’인 AI의 급속한 발달로 과거 지식에 입각한 인간 지식노동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이 시대 최고의 생산요소 자리를 노동이나 기계나 기존 지식이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만이 인간이 기존 지식을 재료로 모방 학습하는 AI와 경쟁할 때 비교우위가 남아있는 최후의 보루, 최후의 생존수단이 되었다.

비트코인 총 가치가 한국 GDP의 절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에 따라 뛰어난 창의적 아이디어의 가치는 이미 천문학적이 되었다. 비트코인이 비근한 예다. 인플레이션을 남발하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화폐를 발행한다는 비트코인의 아이디어는 나온 지 불과 십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현실화하면서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2021년에 1조 달러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5000만 국민이 1년간 열심히 일해서 번 소득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독창적 아이디어 탈취 막아야

이런 시대적 상황에 우리 경제가 생존하기 위해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전혀 승산이 없는 모방형 지식암기 교육에서 환골탈태하여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창조형 교육으로 대개혁을 해야 한다(‘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022년 9월 20일 자).

이와 함께 창의적 아이디어의 재산권을 보장해 주는 획기적인 제도 확립이 절박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아서 누구나 쉽게 훔쳐 간다. 정부, 대기업, 직장 상사, 전문가들이 민간, 중소기업, 직장 후배, 비전문가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인용 없이 탈취하는 일들이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그 재산권을 보장하여 아이디어 절도를 막아주지 않으면 아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연구개발(R&D)에 GDP의 5%나 되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도 경제는 점점 고인 물처럼 썩어가며 정체된다.

‘드라이브-스루’ 같은 아이디어에 보상

이런 까닭에 아이디어 재산권 보장을 위해 필자는 수년 전부터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를 제안해 왔다. 이 제도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대체불가 토큰(NFT) 등을 이용해 ‘전아등(전국민 아이디어 등록제) 플랫폼’에 전산으로 등록하고, 아이디어 원작자의 이름을 붙여주어 명예와 함께 10년간의 소유권을 부여해 주고, 경제적 인센티브도 제공해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검사에서 유용했던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아이디어의 경우, 인천의료원의 김진용이란 분이 처음 제시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원작자의 이름을 붙여 ‘김진용 드라이브-스루’로 등록해 주고 경제적 보상까지 해주는 제도이다. 고속도로 출입구에서 운전자들이 접하는 ‘차량유도 분홍/녹색선’ 같은 유용한 아이디어도 원작자가 밝혀진다면 전아등 제도를 통해 명예와 경제적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 중 하나인 경제적 보상을 위해 정부는 등록된 아이디어를 R&D 예산을 이용해 일정한 금액(예컨대 1000만 원)을 주고 구입한다. 이에 더해 국민은 누구나 ‘전아등 사이트’에 들어가 ‘독창성’, ‘실현 가능성’, ‘유용성’ 버튼을 눌러 아이디어의 상호주관적 평가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국민들의 평가 점수에 비례하여 정부는 각 아이디어에 추가적인 보너스도 지불한다.

뒤이어 이 제도 아래서 정부는 구입한 아이디어들을 아이디어 시장인 ‘전아등 플랫폼’에서 경매를 통해 기업이나 국민에게 판매한다. 아이디어는 원작자가 신청할 때 판매하되, 1년간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경매에 올려 ‘특허 괴물(patent troll)’과 같은 ‘아이디어 괴물’도 방지한다. 경매 후에는 정부가 구매 비용과 보너스만 회수하고 초과 수익은 원작자인 국민에게 되돌려준다. 1000만원에 구입한 아이디어를 경매에서 10억 원에 팔았다면 9억9000만원을 원작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R&D예산 일부로도 아이디어 진흥 가능

이 제도는 이렇게 강력한 경제적 보상을 해줌으로써 전 국민이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 도전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 30조원 중에서 30분의 1인 1조원만 사용해서 등록된 아이디어를 개당 1000만원에 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인센티브에 반응해 우리 국민이 너도나도 동참하게 되면 매년 10만 개나 되는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다.

특히 소수의 기업이나 전문가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수많은 국민이 아이디어 생산에 도전함에 따라 ‘대수의 법칙’을 작동시키게 된다. 비트코인급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10만 분의 1이라 한다면 지금처럼 소수가 도전해서는 그런 아이디어가 절대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전아등’에 10만개의 아이디어가 등록되면 그중 한 개는 비트코인급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 GDP의 절반인 1000조원 소득을 10년에 걸쳐 창출하는 비트코인급 아이디어가 매년 하나씩 나온다면 장기성장률이 5% 포인트나 점프하는 기적 같은 일이 매우 높은 확률로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1960년대 이후 30년간 성장 기적(growth miracle)을 구현했다. 그런 대한민국이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 재산권 제도’ 혁신을 통해 또다시 기적을 시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전면적 실시에 앞서서 정책 혹은 금융 혹은 창업 아이디어에 한정하여 시범적 실시부터라도 당장 시작하자.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의 분업 효과

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핀 만드는 공장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핀을 한 사람이 만들지 않고 여러 사람이 공정을 나누면 생산성이 몇백 배나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다.

분업에 따른 엄청난 생산성 상승효과는 아이디어 생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는 금융이나 정책 아이디어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보호함으로써 이러한 아이디어 분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이디어에는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 중 중요한 것은 ‘무엇’이다. ‘어떻게’는 ‘무엇’이 결정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현재 특허 제도 하에서는 ‘무엇’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기술적 아이디어가 같이 있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는 ‘무엇’에 관한 아이디어만으로도 보호받음으로써 ‘무엇’에 비교우위가 있는 국민과 ‘어떻게’에 비교우위가 있는 국민 간의 분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애플의 놀라운 성공의 숨은 비결은 공동창업자 중 ‘무엇에 관한 문과적 아이디어’에 강점이 있던 스티브 잡스와 ‘어떻게에 대한 이과적 아이디어’에 강점이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 간의 분업이었다.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는 애플이 보여준 효율적 아이디어 분업을 국가 차원의 제도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는 아이디어 보호의 국경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고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부여하여 ‘전아등’ 사이트에 로그인해 등록된 모든 아이디어를 열람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 사이트에 로그인을 허용하지 않고, 외국 기업이나 개인이 ‘전아등’에 등록한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데 우리 국민 중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는 행위는 국내법으로 금지한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이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이 나라들과 외국 원작자의 소유권을 서로 인정해주는 국제협약을 체결하여 아이디어를 국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