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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다양성 존중은 언어에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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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진 미국에 살면서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다양성 가치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생각했다면, 미국에 와서는 다양성의 가치를 매 순간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 검은 머리 아시아인의 외모로, 여성으로, 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최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친구와 시애틀 여행 중에 주변 현지인(백인)들과 대화한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아시아인 외모를 한 우리는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을 받았다. 미국에 와서 정말 아주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100이면 100명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래 출신이 어디인데(Where are you originally from)?”라고 되묻는다. 이는 무례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다. 그 백인 미국인은 ‘미국인이면 이렇게 생겼을 것이고 영어가 모국어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아시아인 외모 사람은 당연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미국에 온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지만, 그 한인 친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브라운백 런치’ 속의 흑인 역사
무심코 쓰는 일상의 편견 표현들
성별·인종·문화에 민감해져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실 일상에서 편견을 없애고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일은 그런 미국 백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언어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역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낮추본다고 오해받거나, 남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미국에 온 뒤 얼마 안 돼서 매달 기자들과 공부하는 프레스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던 ‘브라운백 런치(Brown bag lunch)’라는 단어를 써서 ‘브라운백 런치 프레스 미팅’이라고 내부 문서를 작성하고 동료들과 공유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브라운백 런치’에는 흑인에게 부정적인 스토리가 있으니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던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그 용어에 대해 찾아봤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한 대학교 학생들이 브라운백(마트 등에서 샌드위치 등을 싸던 종이) 색깔을 기준으로 흑인의 피부색을 측정해서 파티 입장 허용 여부를 가렸다는 내용을 봤고, 그런 이유에서 ‘브라운백 런치’란 말을 피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브라운백 런치를 ‘런치앤런 (Lunch and Learn)’ 으로 바꾸었다. 이를 계기로 나 자신부터 언어 민감도를 좀 더 높이고, 또 어떤 말이나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지 찾아보게 됐다.

회사 직원들이 모아놓은 ‘포용적인 언어 리스트’와 작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같은 내용의 리스트를 늘 챙겨보며,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뿐 아니라 내부 문서도 성별, 인종, 장애인,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리뷰한다. 가능하면 성별을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성 중립성 단어들을 사용한다. 남편/아내, 남자/여자친구를 지칭할 때는 partner를 사용하는 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인 대변인은 spokesman 대신 spokesperson을 쓴다. 장애를 나타내는 단어는 일반 표현에 섞어 쓰지 않는다. 시각 장애를 부정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대신에 ‘인지하지 못한 부분’(not knowledgeable)으로 표현한다. 또한 개발자 용어에서도 포용적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허용/비허용을 나타내는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대신에 허용리스트(allowlist)와 비허용 리스트(denylist)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가지 문화와 인종이 두드러지는 한국 사회에서 50년을 살면서 놓쳤던 부분을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시각을 포용하는 일상의 민감도를 높이게 되었다. 내가 소수자로서 나의 나 됨을 존중받고 싶은만큼 우리 주변의 다양한 모습 사람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