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숙제·시험에 챗GPT 활용 늘어, 대학들 대응책 마련 부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6호 25면

김진경의 ‘호이, 채메’

AI 챗봇 표절

AI 챗봇 표절

지난해 12월 말 대학원 학기말 시험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이탈리아 출신 학생 R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가 스위스에서 온라인 시험을 보는 게 처음이라 잘 몰라서 말인데, 혹시 내 컴퓨터에 달린 카메라가 시험 중에 날 감시해? 내가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하는지도 다 기록되는 거야?” 스위스로 유학 온 뒤 처음 치르는 시험을 앞두고 R은 너무 두려워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치러지는 모든 온라인 시험은 오픈북이고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하든 상관없으며 카메라를 통한 감시도 없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시간 배분만 잘하라”는 답장을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스위스 대학들은 대부분의 시험을 온라인, 오픈북으로 전환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진통을 겪었다.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이 R이 걱정했던 ‘시험 중 감시’였다.

대학들이 대면 수업을 중단했던 2020년 집에서 온라인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들이 있었다. 취리히응용과학대학(ZHAW)은 2020년 가을 학기에 의심 사례 21건을 적발했다. 2021년 봄 학기에는 부정행위가 더 늘어났다. 총 142건이 확인돼 학생들이 징계를 받았다. 그러자 이 대학은 온라인 시험 중 발생하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프록토리오(proctorio)라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프록토리오는 컴퓨터 카메라를 통해 시험 중 학생의 머리와 눈동자 움직임, 주변 소리를 기록하고 학생들이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는지 알 수 있도록 네트워크 트래픽도 저장한다. 온라인 시험을 보는 동안 학생들이 철저히 감시당하는 셈이다.

스위스 교사 겸 의원, 국민투표도 검토

취리히응용과학대에 따르면 프록토리오 사용은 취리히칸톤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이고 법적 문제도 없다. 하지만 감시 소프트웨어를 대학에서 사용한다는 게 알려지자 큰 논란이 일었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스위스 사회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지적이었다. 좌파 정치단체인 크리포(KriPo, ‘취리히 비판 정치’)는 “합법적으로 승인된 것이라도 이 소프트웨어는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필요 이상으로 침해한다. 강력한 감시하에 있다는 점이 시험 중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취리히응용과학대학과 달리 취리히대학(UZH)과 취리히공과대학(ETH)은 검토 끝에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생을 신뢰해야 한다’ ‘거짓 경보(부정행위가 아닌데 부정행위로 보고되는 사례)가 많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팬데믹 이후 뉴노멀이 된 온라인 시험이 최근 다시 도마에 올랐다. 부정행위 감시라는 과제는 같으나 이번에는 사안이 훨씬 복잡하다. 새로 등장한 챗(Chat)GPT 때문이다. 챗GPT는 미국 기업 오픈AI가 지난해 11월 말 출시한 인공지능(AI) 기반 챗봇(chatbot)이다. 입력창에 질문을 넣으면 몇 초 안에 대답을 내놓는다. 요구 사항에 맞춰 한 편의 에세이를 써낼 수도 있다. 간혹 잘못된 정보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주제에 맞는 깔끔한 텍스트를 산출한다. 챗GPT의 이런 특성이 현재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 분야다. 초중고 학생들의 숙제는 물론이고, 대학생들의 서술형 시험에도 챗GPT가 유용하게 쓰인다. ‘학생들을 신뢰해야 한다’던 대학들도 챗GPT가 등장하자 우왕좌왕이다.

숙제나 시험에 챗GPT를 이용하는 것은 표절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 의미의 표절, 즉 ‘타인의 결과물을 동의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범죄 행위’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피해자조차 없는 완전 범죄에 더 가깝다. 원하는 답이 몇 초 안에 금방 나온다는 것도 범죄 행위를 부추긴다. 이 새로운 표절은 ‘AIgiarism’이라 불린다. AI와 plagiarism(표절)의 합성어다. 챗GPT가 불러온 AIgiarism에 교육기관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아직 제각각이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미국은 대체로 발 빠른 금지를 택했다. 뉴욕시티의 모든 공립학교는 챗GPT 접속을 아예 막았다. ‘이 도구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다. 호주도 비슷하다. 시드니대학은 최근 ‘인공지능으로 산출한 내용’은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으로 ‘학문적 윤리성 정책’을 개정했다. 하지만 학교 통신망에서 챗GPT를 막아도 VPN(가상 사설망)을 경유해 접속하는 방법이 있고, 또 집에서 써서 제출하는 과제에 챗GPT를 사용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 경우 결과물이 챗GPT로 만들어진 것인지 추후 판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교사 부족 문제 해결에 챗봇 이용할 만

챗GPT의 발달로 숙제나 시험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대학들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KT DS에서 출시한 부정행위 탐지 솔루션 아르고스. [연합뉴스]

챗GPT의 발달로 숙제나 시험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대학들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KT DS에서 출시한 부정행위 탐지 솔루션 아르고스. [연합뉴스]

지난 1월 2일 공개된 GPT제로는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프린스턴대 학생 에드워드 티안이 개발한 이 앱에 의심스러운 텍스트를 넣으면 그것이 챗GPT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판별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텍스트의 복잡성이다. 챗GPT의 산출물은 사람이 쓴 것보다 단순하다. 둘째는 변동성이다. 사람이 쓴 문장은 챗GPT의 산출물보다 길이, 구조 등에서 변동이 더 심하다. 현재 하버드, 예일 등을 포함해 여러 대학에서 6000명 이상의 교수들이 GPT제로를 이용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령은 규제를 늘 반 발짝 앞서가기 마련이다. 복잡성과 변동성을 기준으로 챗GPT 사용을 판별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챗GPT의 산출물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고 각 문장의 길이를 들쑥날쑥하게 바꾸면 GPT제로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인터넷 포럼 레딧(reddit) 등에서는 이런 식으로 GPT제로에 걸려들지 않고 성공적(?)으로 시험에 통과했다는 대학생들의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그것을 규제하는 기술, 그 규제를 피해갈 기술이 연이어 나타나는 이 상황을 전문가들은 ‘군비 경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감시에 특히 예민한 스위스의 경우 무조건 금지보다는 제3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바젤대는 1월 중순 챗GPT 문제를 논의하는 워킹그룹을 꾸렸다. ‘AI가 아닌 학생 스스로 시험을 치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시험 방식을 개발하고, 동시에 학생들에게 이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워킹그룹의 목적이라고 한다. 북서스위스 응용과학대(FHNW)도 ‘챗GPT 사용을 허가하되 비판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스위스 사회민주당(SP) 소속 바젤란트 지역 의원인 얀 키르쉬마이어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키르쉬마이어는 바젤 지역 중학교 역사 교사이기도 한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챗GPT에 대해 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뉴욕처럼 챗GPT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비슷한 챗봇이 가까운 미래에 더 발전한 형태로 나올 것이고, 그런 도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스위스 공영방송 SRF 인터뷰). 챗GPT 사용 방식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이 문제를 기술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결정짓는 것은 그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챗GPT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 기술이 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인다면 어떨까.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향후 10년간 교사 1만 명 이상이 부족할 전망이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교사 한 명이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어떨까. AI 챗봇이 산출하는 내용 중 거짓 정보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방안까지 수업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탄생한 기술을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것의 발전 방향이라도 우리가 정해야 한다.

김진경 작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한국과 스위스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 『오래된 유럽』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