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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1월 인·태 외교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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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중국의 위협적인 부상에 대한 비관적 견해가 미국 정가에 팽배한 것은 맞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새해 첫 한 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거둔 성적표는 훌륭하다. 뭐니해도 가장 큰 기여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지만,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그리고 역내 전략을 짠 백악관 아시아팀의 역할도 컸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일본·호주·인도와 대부분의 유럽 및 아세안의 뒤를 이어 지난 12월 인·태 전략을 발표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 국가는 1940년대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 중심 운명공동체 비전’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정부의 인·태 전략은 국익에 기반해 세밀하게 설계됐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 미국에 큰 승리를 의미한다. 첫째, 중국 정부의 전략가들은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한반도는 응당(평화로운 방식으로)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에 드러난 한국의 국익은 중국의 강압과 패권 국가를 향한 야망에 대한 다른 강대국들의 우려를 공유한다. 한국의 인·태 전략에서 이러한 전략 수립의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지는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하다.

성패 판단 일러도 최대 성과 거둬
시진핑 주석의 패권주의에 족쇄
한국의 인·태 전략 발표도 큰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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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태 전략을 통해 한국은 앞으로 재원을 활용해 호주·미국 등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과 외교, 인프라 투자 및 공적개발원조(ODA) 부문에서 발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미·일 동맹 관련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양국 간 여러 번의 정상회담과 국방 협정 체결이 이어졌던 지난 한 달을 일본과 1월을 합친 ‘저패뉴어리(Japanuary)’라고 불렀을 정도다. 핵심은 국방비를 1%에서 2%로 증액하는 것에 방점을 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책을 지지하는 틀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상당한 규모의 증액으로 역내 억지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인도 정부도 미국과 역량 구축에 합의해 상당한 혜택을 보게 됐다. 앞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뉴델리에서 열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인도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수 없는 이유로 인도 군대가 여전히 무기 장비에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인도의 중국에 대한 정책은 저가의 중국 화웨이 5G 네트워크와 인도의 뒤처진 기술 산업 역량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에 대해 지난 1일 미국이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개발 분야에서 인도를 지원할 것이라는 발표했다. 이는 호주·영국과 맺은 오커스(AUKUS)는 물론 일본·한국과 맺은 협정과 궤를 같이한다.

2월 첫째 주에 미국 정부는 일본·네덜란드와 핵심 반도체 제조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제 중국은 정밀 반도체 생산 유지뿐 아니라 애플 아이폰 같은 제품 설계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필리핀은 대만 근처 필리핀 영토까지 미군 접근권을 확대하는 방위력 확대 협정(EDCA)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전임자인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 정책을 유지할 계획이 있다거나 독재자였던 부친 축출로 인해 미국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중국의 반대편에 세우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지만 사실 이는 모두 시진핑 주석의 책임이다. 필리핀·호주·한국 등 역내 국가에 경제 보복과 군사적 압력을 가하고, 인도와는 국경 분쟁으로 패권 국가 입지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야심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이러한 위협 전술로 미국과 역내 국가들의 연대가 약해지기를 원했지만, 역내 영향력 있는 국가들은 미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대중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물론 지난 한 달의 성과만으로 전략의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다. 예컨대 한국의 인·태 전략이 실제로 이행돼야 때가 되면 미국·일본·네덜란드 3국이 최근 합의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협약에 한국의 동참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난 1월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이 최대 성과를 낸 시기임은 분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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