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사찰 거부|이은철<서울대 공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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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북한과의 인적교류가 지금은 신문지상을 덮고있다. 남북한한통일 촉구·남북총리회담·올림픽에서 단일 팀 구성 등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현실화되고 있거나 논의되고 있다. 북한과의 과학교류는 어떨까. 북한과의 원자력 기술교류는 어떨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무엇인지 찜찜한 것이 남는 것은 필자의 고집스런 편견일까.
지난해 신문뉴스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 가능성이 여러 번 보도된 적이 있다. 북한이 영변지역에 핵폐기물 재처리공장을 설립하고있는 현장을 인공위성이 포착하고, 상당한 인력이 이 분야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북한이 취하고 있는 개방정책은 가면에 불과한 것일까.
북한은 이미 85년에 핵 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하면서 핵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핵 확산 금지조약은 단순히 핵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그치지 않고 그 후속조치로 핵 시설의 국제적인 사찰을 받겠다는 약속까지 해야한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북한은 사찰을 받지 않으려고 후속조치인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협정조치에 지금까지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핵 개발 중지의사를 천명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으며, 오히려 조약에 가입한 자체가 또 하나의 가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지금까지 원자력분야를 개발해 온 과정을 보면 몇 가지 의심나는 점이 있다.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는 실험을 목적으로 소련에서 기술을 도입한 소형이나 두 번째 원자로부터는 자체개발을 해왔다. 그들이 개발한 원자로는 50년대 말 프랑스에서 개발하다가 중지한 플루토늄 생산목적의 대형 연구용 원자로로 알려지고 있다. 프랑스가 이 유형의 원자로를 개발하다가 중지한 이유는 플루토늄생산 이의의 다른 장점이 없어 연구용으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는 점을 보면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런 모든 것이 기우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만일 이 좁은 땅 덩이 위에서 핵전쟁이 터진다면 그것은 공격을 한 당사자도 심각한 피해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자신들이 같이 망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며, 잿더미가 된 땅을 통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해 핵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북한이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안전협정조치에 서명하는 것만이 남북간의 대화를 진전시키는 지름길일 것이다.
◇필자 약력= ▲43세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미국메릴랜드대 핵 공학과 졸업 (박사) ▲원자력연구소 원자로관리실 연구사보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 교수(78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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