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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이젠 마스크 뚫고 선 베풀 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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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30면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당신의 의사결정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열정, 사랑, 설렘 같은 감정이라면 당신은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공포, 두려움, 불안이 의사결정의 가장 큰 동력이라면, 삶은 얼마나 괴로운 것일까.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마스크 없이는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지도 못했던 지난 27개월간 우리는 집단의 의사결정 요인이 공포, 두려움, 불안인 시대를 살아온 것은 아닐까. 희망과 기대, 정의와 연대감을 주춧돌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감염 가능성을 피하는 쪽으로 사회의 역량을 집중했기에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보복소비’나 ‘보복여행’이라는 집단적 보상심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그동안 잃어버린 모든 가능성을 되찾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는 삶 때문에 잃어버린 당신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나는 ‘조심, 또 조심’을 속삭이며 그 모든 새로운 실험을 향한 호기심을 통제했던 지난날이 안타깝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삶, 대체로 정적인 삶을 사는 나조차 후회로 가득한데, 반드시 외부활동을 해야만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코로나 때문에’ 공연과 전시 기회를 놓친 예술가들, 온라인수업으로 인해 따스한 교우관계를 맺을 기회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이 이제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꿈을 이루고픈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가능성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27개월간 마스크에 막혔던 삶 해방
‘짓눌렸던 사랑’ 마음껏 나눠 보자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선을 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코로나 시대 이전의 나는 ‘사랑받고 싶은 열망’이 내 안의 가장 깊은 열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사랑받고 싶은 열망보다 사랑을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미 품고 있는 내 사랑을 얼마든지 퍼 주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내 안의 더욱 깊은 열망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도 참고, 낯선 타인을 향한 친절과 배려의 마음을 보여 줄 기회도 잃어버린 채 산다는 것은 참혹한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구를 그저 가슴에 억누른 채 살아가고 있는가. 가족을 만나는 것마저 꺼려지던 시절을 거쳐 온 우리에게는 이 짓눌린 사랑, 표현하지 못한 사랑, 미처 해 보지 못한 사랑이 얼마나 사무칠까. ‘코로나 때문에’가 마치 모든 일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시절, 감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향에 오랫동안 내려가지 못하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찾아뵙지 못한 그 모든 시간’이 사무친다는 사람도 있다.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던 내 친구는 유기견을 입양하여 마음껏 사랑을 퍼줌으로써 온갖 콤플렉스와 자기혐오의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역시 마음껏 사랑을 퍼 주는 것만큼 완벽한 치유제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사랑을 받고 싶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너무도 절실하게 표현하고, 베풀고,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존재의 증명은 곧 ‘선(善)’의 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선한 일을 하는가에 따라 이 세상에 더 많이, 더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입을 가리고 살아가는 만큼 세상에 덜 존재하는 느낌, 덜 즐거운 느낌, 덜 행복한 느낌이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선을 베풀 기회를 많이 잃어버렸기에 나는 그만큼 세상에 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더 많은 선을 베풂으로써 더 강렬하게 존재하는 사람,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더 깊게 이 세상에 뿌리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용감하게 우리들 사이에 그어진 수많은 눈치보기의 선, 금기의 선, 통제의 선을 뛰어넘고 싶다. 마침내 꿈꾼다. 내 안의 모든 억눌린 사랑, 우리 안의 모든 억눌린 친밀감과 우정과 연대감이 마침내 마스크를 뚫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가끔은 오직 선(線)을 넘어야만 보이는 생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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