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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61) 전전반측(輾轉反側) 못 이룬 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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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전전반측(輾轉反側) 못 이룬 잠
이세보(1832∼1895)

전전반측 못 이룬 잠 사오경(四五更)의 닭이 운다
시비를 열고 보니 눈이 오고 달이로다
어찌타 유벽산촌(幽僻山村)에 개는 짖어대는가
-이세보풍아별집하권(李世輔風雅別集下卷)

고통을 견디는 시의 힘

이세보는 조선 25대 철종의 사촌 동생이다.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로 혼미했던 당시 경원군 이하전(李夏銓), 흥선군 이하응(李昰應)과 함께 뚜렷한 종친이었다. 20세 때 경평군 작호를 받고 현록대부(정1품)가 되어 왕의 수라상을 감독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이세보의 영특함을 내심 불안히 여긴 안동 김씨 일파는 터무니없는 죄명을 씌워 29세 때 11월 6일(음), 전라도 신지도(완도) 강독 마을로 유배시켰다. 그는 『신도일록(薪島日錄)』에 “처마 앞을 빽빽이 가시나무 줄기로 에워싸, 울 틈으로 작은 문을 내고, 문 위에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으니, 겨우 한 사발 음식을 통하여 출입하게 함일러라”며 위리안치(圍籬安置)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소개한 시조에는 몸을 뒤채며 잠 못 이뤄 밤을 지새는 정경이 절절하다. 사립문을 열고 보니 눈이 오고 달이 비친다. 이 궁벽한 산촌에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세보는 자신의 수난사를 한글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유배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 완도읍 장좌리 해변의 수석공원에 이세보 시조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삶의 고통을 77수에 이르는 시조를 지으며 견뎌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