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카톡 수백건, 돈 통째 빼갔다…'80억 재테크 사기' 전말 [월간중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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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상담, 당신의 재산을 노린다

투자 유도하려 하루 카톡 수백 건씩… 넘어간 즉시 원금 못 찾아
예방이 최선… 금융범죄 사용되는 대포통장 거래자 처벌 강화해야

재테크 사기 범죄가 서민의 목돈 마련 꿈을 앗아가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일산 장항동에 있는 대형 상가의 모습. 내부자에 따르면 이 일대에 재테크 사기 범죄 조직이 상주하고 있다.

재테크 사기 범죄가 서민의 목돈 마련 꿈을 앗아가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일산 장항동에 있는 대형 상가의 모습. 내부자에 따르면 이 일대에 재테크 사기 범죄 조직이 상주하고 있다.

"실명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른다. 얼굴도 본 적 없다. 문득문득 사기를 당하는 것 아닌가 의심되지만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반환점을 넘어선 후였다. 돌이켜보면 비웃음을 사도 싸다.” 재테크 사기를 당한 한 30대 남성 피해자의 고백이다. 목돈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에게 주식 리딩을 해주겠다며 투자금을 챙긴 뒤 잠적하는 재테크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재테크 사기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범죄가 아니다. 쉽게 말하면 과거부터 활개를 치던 ‘투자 사기’와 맥락이 같다. 자신이 소문난 주식 전문가라며 투자금을 맡기면 차익을 실현해주겠다고 유혹해 돈만 챙기고 사라지는 전형적인 사기범의 수법과 닮았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서민들의 초조한 투자 심리를 물고 들어가 그들의 ‘피 같은’ 돈을 통째로 빼간다.

이전의 투자 사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재테크 사기는 철저히 개인 대 개인 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자리한다. 월간중앙은 오랜 탐문 끝에 재테크 사기에 가담한 내부자 한 명을 설득해 범죄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수백 차례 카톡으로 대화하다 어느새 속아 넘어가

재테크 사기 관련 제보자가 기자에게 보여준 한 피해자의 입출금 내역. / 사진:제보자

재테크 사기 관련 제보자가 기자에게 보여준 한 피해자의 입출금 내역. / 사진:제보자

1월 초순 어느 날 밤, 기자는 서울 서초구의 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김모씨를 만났다. 이른바 ‘조직’에 몸담고 있는 김씨는 과거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살았던 전과자였다. 그는 “깨끗하게 다 털어놓겠다”며 경기도 일산 장항동에 있는 대형 상가에 본사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 조직을 특정했다. 장항동 본사는 사장을 포함해 범행을 지휘하는 총책이 상주하는 근거지라고 했다. 그가 밝힌 조직원의 규모는 10명 안팎으로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이들 조직이 벌어들인 범죄 수익은 8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본사 조직원들은 크게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문자와 카카오톡 광고 글을 대량 발송하는 작업팀, 그리고 피해자에게 투자를 유도하는 상담팀으로 나뉜다고 한다.

김씨가 상담팀이 고객(피해자)과 대화한 카카오톡 내용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피해자와 카카오톡 대화를 주고받으며 피해자의 의심을 잠재우는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어떻게 차익 실현율 90%를 보장하느냐?“고 물으면 “주식 변동을 실시간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시하는 타이밍에 매수와 매도를 하면 된다“고 답하는 식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거래소 사이트에 나오는 주식 변동 결과를 몇 초 앞서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도 피해자가 미심쩍어하면 단체 투자방에 초대한 뒤 투자에 성공했다는 다른 ‘고객’과 대화를 유도한다. 물론 투자에 성공했다는 이 ‘고객’은 가짜다. 상담원이 1인 2역을 하는 것이고, 앞서 미끼로 쓴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의 거래소 사이트에 나오는 주식 변동도 리모컨 하나로 조작이 가능한 가짜 그래프다. “사이트를 따로 만들어주는 개설책도 있다. 조직에 소속된 팀은 아니고 외주업체로 보면 된다. 건당 1500만원을 받는다.” 김씨의 설명이었다. 결국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피해자는 이들의 사이트에 가입한 뒤 나중에 환전이 가능한 포인트(머니)를 위해 돈을 입금하게 된다. 하지만 계좌번호는 사이트의 고객 문의 카테고리를 통한 일대일 대화로만 전달되며, 그조차도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바뀐다.

기자가 재테크 사기를 취재하며 만난 40대 방모씨는 이 같은 재테크 사기 범죄에 당해 1억9000여만원을 손해 본 피해자다. 울산광역시에 거주하는 그는 2019년 6월경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초대되면서 주식 리딩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 100여 명이 한꺼번에 초대됐고 나 또한 바로 퇴장하려고 했지만 급한 볼일 때문에 채팅방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며칠 뒤 다시 확인했을 때는 내용이 그럴듯해서 사업자금을 마련해볼 수 있겠다는 흥미가 생겨 리딩을 요청하게 됐다.” 당시 ‘우민호 팀장’이라는 상담원과 연결된 방씨는 한 달간 약 4000회가량 그와 상담을 주고받으며 투자를 이어가게 된다. 방씨가 한 일은 우 팀장의 리딩에 따라 ‘500만원을 매수하라’, ‘1000만원을 매도하라’ 등의 지시를 받고 가짜 거래소의 매수/매도 버튼을 마우스로 몇 번 누른 것뿐이다. 카톡방의 사이트 머니는 나날이 불어났지만 실상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대포통장에 들어간 그의 원금은 한참 전에 조직이 회수해 이미 어딘지도 모를 공중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우민호란 사람의 연락처도, 그의 실제 이름도, 고향도, 거주지도 몰랐다. 평소 살갑던 그는 중도 출금을 문의하자 거래소 규정상 불가하다며 이전과 다른 일면을 보였다. 반드시 목표 금액을 실현하고 자신에게 커미션이 떨어진 뒤에야 돈을 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방씨는 목표 금액인 5억원을 실현했다. 하지만 돈은 환급받지 못했다. 이전에 리딩을 받지 않고 방씨가 독단으로 만원을 매수한 사례 등 갖가지 규정 위반 사유가 언급되며 수천만원을 추가 이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된 방씨는 연락을 시도했지만 우 팀장은 이미 잠적한 뒤였다.

차명 뒤에 숨어 유령처럼 활동하는 조직

1. 피해자와 리딩을 가장한 재테크 사기 조직원과의 대화. 피해자가 중도 출금을 시도하자 조직원은 말을 둘러대고 있다. / 2. 피해자와 리딩을 가장한 재테크 사기 조직원과의 대화. 피해자가 목표 금액을 실현했음에도 조직원은 약속과 달리 추가 이체를 해야 한다며 출금을 거부하고 있다. / 사진:제보자

1. 피해자와 리딩을 가장한 재테크 사기 조직원과의 대화. 피해자가 중도 출금을 시도하자 조직원은 말을 둘러대고 있다. / 2. 피해자와 리딩을 가장한 재테크 사기 조직원과의 대화. 피해자가 목표 금액을 실현했음에도 조직원은 약속과 달리 추가 이체를 해야 한다며 출금을 거부하고 있다. / 사진:제보자

또 다른 재테크 사기 범죄 피해자 박모씨는 커미션을 제때 입급하지 못했다는 규정 위반 사유로 아예 원금이 몰수된 사례다. 30대인 박씨는 “내 사이트 머니가 3억원대였고, 커미션은 5000여 만원이었다. 3억원이 내 돈인데 거기서 5000여 만원을 차감하고 나머지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상담원을 고소한다고 해도 원금을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 그럴까? 우 팀장의 경우처럼 혐의자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은 계좌 명의자부터 수색한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급전이 필요해 자신의 명의를 범죄 조직에 팔아치운 대여자에 불과하다. “대포통장은 모든 금융범죄에 인출 도구로 사용되는 핵심이기 때문에 범죄자들한테 최고 중요한 준비물이다.” 이기동(42)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의 지적이다.

이 소장은 최근 재테크 사기 범죄 조직들은 불법대출 사기를 통해 명의 대여자를 구한다고 전했다. 이 소장이 들려준 조직들의 수법은 이러했다. 우선 온라인이나 무료 생활정보지에 신용불량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 글을 게시한 뒤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일단은 신용이 좋지 않아 대출이 당장 힘들다고 거절한다. 그러고는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어 비밀번호까지 함께 넘기면 알아서 입출금 거래 실적을 쌓게 해주겠다고 꼬드긴다. 이 과정에서 유령 법인을 세우고 법인 명의로 계좌 여러 개를 만들어 전달해주면 최대 1억원까지 대출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 밖에 온라인 구인 구직 사이트나 생활정보지에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올려 지원자의 신분증,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수법도 동원된다. 앞서 울산에 사는 방씨 사건을 맡은 경찰은 실제 수사에 들어가 3명의 계좌 명의자를 적발했다. 계좌를 빌려준 사람들은 각각 강원도 속초, 경상남도 진주,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방씨가 진행한 부당이득 청구 민사소송에서 자신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자료를 제공했을 뿐이라며 사기 범죄에 이용당할 줄은 몰랐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테크 사기 조직은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어떻게 회수할까? 앞서 기자에 제보한 조직원 김씨에 따르면, 우선 피해자에게 투자금을 이체한 사실을 자신들에게 알릴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금융기관이 사기가 의심되는 계좌의 지급을 정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하부 조직원인 인출책을 동네 편의점 ATM기로 보낸다. 조직원 김씨는 “계좌에 돈이 들어오면 인출책이 가장 바쁘다. ATM기 한도가 600만원이어서 수거해야 하는 액수가 5000만원이라면 총 9곳을 돌아야 한다.” 이들은 퀵 배달 오토바이로 동네를 쏘다니는 탓에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말’이라고도 불린다. 김씨는 “ATM기는 두 번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CCTV에 혹여나 얼굴이 찍혀 증거로 남을 수 있는 데다가, 지급 정지된 계좌에서 인출을 시도하면 그 즉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다. 자칫 경찰에 붙잡혀 줄줄이 엮여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수사로는 웬만해선 잡히지 않아

대강의 재테크 사기 수법은 이렇지만 경찰의 통상적인 수사로는 웬만해선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상선(윗선)을 제외하고 조직 구성원은 서로의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익명을 유지하는 점조직이기 때문에 경찰이 전체적인 조직 규모와 조직원 머릿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제보자 김씨의 설명이었다. 또한 이들이 쓰는 휴대폰도 대부분 중국인 명의로 된 대포폰이라고 했다. 김씨는 “유심을 구해다 주는 업자들도 따로 있다. 개당 40만원 정도다. 경찰이 총책 사무실에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게 데스크에 도열된 수많은 대포폰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재테크 사기범죄는 예방이 최선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수사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재테크 사기 범죄와 관련해 대포통장 개설책을 추적, 조직원을 검거한 뒤 조직원에게 상선의 신원을 요구하는 플리바겐(plea bargain)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지능범죄팀장은 “재테크 사기단의 본사로 의심되는 곳은 수도권에서 수십 개가 넘는다. 주로 서울 강남 논현동과 강북구·성북구 일대, 경기도 일산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핵심은 대포통장이다. 그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재테크 사기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으로 반드시 연결된다”고 말했다. 금융사기 등 중요 범죄 첩보에 일가견이 있는 한 수도권 정보관은 “유심 업자들은 퀵서비스로 특정 장소에 나온 조직원에게 물건을 넘긴다. 이들이 점조직으로 돼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상선끼리는 접선하게 돼 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어떻게 일망타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동부지검은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을 설치하고 보이스피싱 등 사이버 금융범죄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취재에 따르면 합수단은 재테크 사기 범죄 조직을 일부 특정하고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한편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의 유통을 막기 위해 관련 법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포통장 거래자 또한 재테크 사기 범죄 조직의 공범 수준으로 양형기준을 높여야 유통 자체가 근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법인통장 개설 절차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대 교수는 “범죄 자금이 유통되는 대포통장 개수가 무작정 늘어나는 것은 한 사람이 하루에도 법인을 몇 개씩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설립이 쉽기 때문”이라며 “유령 법인은 신속하게 해산시킬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고, 법원행정처도 동일인이 법인 등기를 많이 내는 경우엔 자동으로 신고돼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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