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트로트 오디션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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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계묘년 설날 연휴를 즐겼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지난 3년 코로나로 위축됐던 공연예술계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한다. 대중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트들이 많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기를 바란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넘어 현재 대한민국 문화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전통가요라 불리는 트로트 음악이다. 트로트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공연예술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동안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방송매체가 주도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스타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대중의 폭발적 관심은 음악시장 판도를 빠르게 바꿔나가며 어느덧 대한민국의 문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동안 폭발적 성장세
공연계 빨아들이는 블랙홀 비슷
문화적 쏠림·양극화 현상 가속화
음악의 다양성은 이름뿐인 건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TV조선 ‘미스터트롯2’(오른쪽)와 MBN ‘불타는 트롯맨’ 포스터.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TV조선 ‘미스터트롯2’(오른쪽)와 MBN ‘불타는 트롯맨’ 포스터.

우리에게 트로트라는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 대중음악은 일제강점기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유행가로서 이후 음악적 선율과 형태를 변화하며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발전돼 왔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참조)

트로트 음악은 한때 특정 계층과 일정 세대만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이른바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트로트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오늘날 대중의 폭발적 관심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 유행가에서 대한민국 전통가요라는 수식어를 갖기까지 트로트의 발전과 그를 위한 종사자들의 노력은 가히 높게 평가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거대 언론매체의 힘을 배경으로 한 전통가요의 가파른 성장이 모든 공연예술 분야를 빨아들이는 듯한 블랙홀이 돼 가는 상황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국은 크게 지상파(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로 나뉜다. 공중파의 경우 대상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만큼 더욱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그에 반해 종편은 유료 가입을 한 소비자에게만 제공되며 IPTV·케이블 방송 등의 플랫폼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사업자로서, 사업 목적에 따라 보다 전략적인 프로그램 편성이 가능한 구조이다.

방송사에서 시청률은 핵심적인 요소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영방송 경우에도 소비자의 만족도라 평가할 수 있는 시청률은 중요한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된다. 대다수 방송사에서 시청률을 담보로 한 광고수익은 곧 프로그램의 존폐와 직결된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수익을 내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성공의 짜릿함을 맛본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과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그들이 만들어 낸 스타들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막대한 상금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고 예술의 흥행성을 조장하며 시청률을 위해 순수예술 분야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 듯한 지금의 프로그램 운영방식은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매체에서 오직 시청률과 광고 수익으로만 대변되는 그들의 시장 논리로 인해 특정 장르를 몰아주는 듯한 문화적 쏠림현상은 일시적인 사회현상을 넘어 공연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시장의 불균형을 가속하고 있다.

방송국의 성격을 떠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언론매체라면 그 사회적 영향력이 미치는 공익적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청률과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적 목적 이전에 대중의 다양한 문화 향유권을 존중하며 문화예술계 전반에 긍정적인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성격상 그에 참가하는 개인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높이며 인정받아야 하는 순수예술 분야 예술인들이 그들의 언어로 고유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으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찾지 못한 채 상업적 목적이 강한 대중예술 분야에 뛰어들게 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단순히 흥행을 목적으로 모 대학 출신 성악가, 성악·국악계의 떠오르는 샛별, 혹은 뮤지컬계에서 인정받은 배우 등의 수식어로 방송에서 표현되는 이미지 소모에 대한 경계도 필요한 부분이다.

방송매체가 주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예술의 고유성과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예술계의 균형 발전을 위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방송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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