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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 있는 일" 왕이 뭘 했대요? 교실서 '삼일사흘'마다 이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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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글날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상설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한글날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상설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그런 일이 왕왕 벌어지지.”
서울의 한 고교 국어교사 A씨가 말하자 교실에 웃음이 퍼졌다. 영문을 모른 채 갸우뚱하던 A교사에게 한 학생이 “왕왕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가끔, 이따금'의 뜻을 가진 '왕왕'을 학생들은 국가 우두머리를 뜻하는 '왕(王)'을 두 번 붙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A교사는 “예전처럼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하는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학생 어휘력이 많이 떨어지는 걸 체감한다”며 “국어 단어 뜻을 영어 단어로 설명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최근 래퍼 노엘(22·장용준)이 사흘과 4일을 혼동한 듯한 가사의 노래 ‘Like you’를 발표하며 어휘력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교사들은 “비단 특정인의 상식 부족이라고 지적할 건 아니다”고 말했다. 비슷한 일이 교실에서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 제국주의'는 절반만 제국 주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에서 재직 중인 B교사는 몇 해 전 시험 감독을 들어갔다가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시험 문제 선택지에 “고궁에서 학생들이 고성방가를 하고 있다”는 문장을 본 학생이 “고궁이 음식점이냐”고 물었다. 옛 궁궐을 뜻하는 '고궁'을 음식점 상호로 생각한 것이다. B교사는 “한자어를 잘 몰라서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온라인에서는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깊다는 의미의 '심심한'을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 벌어진 논란이었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 C씨는 “논란이 있었던 뒤로 학생들 앞에서 '심심한'과 같은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최근 한 동료 역사교사는 수업 시간에 ‘반(反)제국주의’라고 말했다가 학생들이 ‘반(半)만 제국주의라는 뜻이냐’고 물었다고 하더라”며 “학생의 어휘력 부족은 이제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라고 말했다.

“노력의 문제” vs “찾으면 나오는 정보”

사진 노엘 인스타그램

사진 노엘 인스타그램

교사들은 어휘력 문제를 단순히 학생들의 상식 부족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 끝에 느낌표를 붙였더니, 학부모가 ‘왜 화를 내시냐’고 항의를 한 적도 있다”며 “좀 더 글을 들여다보고 문맥상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A교사는 “영어 단어는 단어장까지 들고 다니는데 국어는 모국어라 그런 노력에 소홀하다”며 “단어를 모르면 정확한 뜻을 찾아보면 되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엉뚱한 뜻으로 이해하는 걸 보면서 정확한 검색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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