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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헝가리는 죄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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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헝가리는 슬로바키아·루마니아 등 7개국과 국경을 맞댄 동유럽의 작은 나라다. 인구는 1000만 명이 채 안 되고,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0분의 1 정도다. 우리와 교역 규모는 크지 않은데 삼성SDI와 SK온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으면서 좀 더 가까워졌다. 한국과는 가슴 아픈 인연도 있다. 2019년 5월 수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침몰해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랜만에 헝가리가 등장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헝가리 모델’을 언급하면서다. 그는 지난 5일 신년 간담회에서 “저리 대출제도는 있지만, 불충분하다”며 “출산에 따라서, 더 과감하게 원금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는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는 2019년부터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자녀 계획을 세우면 정부가 최대 1000만 포린트(약 3500만원)를 빌려준다. 현지 직장인의 2년치 연봉 정도다. 5년 이내에 아이를 낳으면 이자를 면제해준다. 2명이면 대출액의 3분의 1, 3명 이상이면 전액 탕감하는 식이다. 4명 이상 낳을 경우 소득세를 평생 면제해주는 방안도 있다.

헝가리는 원래 도전적인 저출산 대책으로 유명한 나라다. 출산시 학자금 대출 감면, 육아휴직 3년, 양육보조금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효과는 있었다. 1.24까지 하락했던 합계출산율이 2020년 1.52(OECD)로 상승했다. 1990년대 중반 수준을 회복했다. 원금 탕감책 역시 시행 직후인 9월 결혼 건수가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출산율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일단 반응은 있었다.

물론 무작정 따라 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말도 못 꺼낼 얘기 역시 아니다. ‘당장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권에선 “얼빠진 공직자”(신평 변호사), “한번 튀어 보려고”(홍준표 대구시장) 등 맹공이 쏟아졌다. 대통령실이 직접, 닷새 연속 반박하는 모습도 이례적이었다. 나 부위원장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지금 그가 미움받는 이유는 짐작된다. 다만 헝가리를 무시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4. 독보적인 전 세계 최하위다. 참고로 10년 전 두 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