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야 팽팽…준예산 체제로 새해 맞은 성남과 고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월 26일 열린 제277회 성남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모습. 지난해 말까지 올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성남시는 이달 1일부터 준예산 체제에 돌입했다. 성남시의회

지난 12월 26일 열린 제277회 성남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모습. 지난해 말까지 올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성남시는 이달 1일부터 준예산 체제에 돌입했다. 성남시의회

“조례에 시장의 책무로 ‘청년기본소득의원활한 지급을 위해 필요한 적정한 규모의 예산을 마련하라’고 돼 있는데 시장이 안 지켰다.”(서은영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의원)

“(청년기본소득은) 청년을 위한 정책이지만, 청년이 아닌 그들의 부모님이 대부분 쓰거나 귀금속 거래 등 애초 목적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김보미 국민의힘 성남시의원)

 지난해 12월 13일 열린 경기 성남시의회 제276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차 회의. 여야 의원들을 이재명표 정책인 ‘청년기본소득’ 예산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다. 만 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로 25만원씩 지역화폐로 총 10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도입했고 경기지사 재임 기간에 도내 31개 시·군으로 확산됐다.

성남시의회 국민의힘은 지난 11월 청년기본소득 조례안 폐지를 추진하다가 철회했지만 성남시가 조례 폐지를 전제로 예산에 청년기본소득 예산에 반영하지 않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년기본소득 예산 30억원 반영”을 요구하며 예산안 심사를 거부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신상진 성남시장과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해당 예산 편성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예산 심의는 결국 파행으로 흘렀다. 결국 성남시는 지난 1일부터 준예산 체제에 돌입했다. 준예산은 법정기간(연말)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은 경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난해 예산에 준해 잠정적으로 법정 경비만 집행하는 것이다. 성남시에서 준예산 사태가 벌어진 것은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지난 1월 6일 열린 고양시의회 제 270회 임시회 모습. 고양시의회는 지난해 말까지 올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아 현재 준예산 체제다. 고양시의회

지난 1월 6일 열린 고양시의회 제 270회 임시회 모습. 고양시의회는 지난해 말까지 올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아 현재 준예산 체제다. 고양시의회

 고양시도 의회 민주당과 집행부의 갈등으로 29963억원이 달하는 올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준예산 체제로 전환됐다. 전국에서 준예산 체제에 돌입한 지자체는 성남과 고양시뿐이다. 고양시에선 국민의힘 소속 이동환 시장과 민주당 시의원단 간 누적된 갈등이 준예산 사태로 이어졌다. 이 시장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개막식 기조연설을 위해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의 마지막 날인 지난 11월 이집트로 출국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민주당 시의원 17명이 이 시장의 출국을 반대하는 성명을 낭독하려는 것을 현장에 있던 이상동 시장 비서실장이 만류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공식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시장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이 고양시가 예산안에서 제외한 주민자치회 운영비와 지역화폐 고양페이 할인비용, 남북협력 사업비 등에 대한 재편성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여야 의원 수 팽팽, 갈등 해결은 요원

 여·야의 팽팽한 힘의 균형도 두 인구 100만 도시가 맞는 준예산 사태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고양시의회의 경우 여·야 의원 수가 각각 17명으로 동일하다. 성남시의회는 국민의힘 의원이 18명, 민주당 의원 16명으로 국민의힘 의원 수가 2명 더 많지만, 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는 여·야 의원 수가 각 6명으로 같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여야 의원 수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당론으로 결정된 안건은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서 통과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준예산 체제 돌입으로 각종 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성남시는 연초부터 지급해야 할 무상급식비(554억 원)와 보훈명예수당(7억3000만 원) 등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양시도 지난 2일부터 시행하려고 한 ‘공공근로 사업’(20억 원)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러나 성남시는 취약계층의 생계유지비 등 520억 원에 대해 선결처분권을 발동했고, 고양시도 검토하고 있다. 선결처분권은 주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사안에 대한 의결이 지연될 때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사하는 예산집행상의 비상 조치권이다.

경기 성남지역 시민단체인 성남시민연대는 지난 5일 성남시 준예산사태에 대한 성남시의회 의원들의 빠른 정상화 요구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성남시민연대

경기 성남지역 시민단체인 성남시민연대는 지난 5일 성남시 준예산사태에 대한 성남시의회 의원들의 빠른 정상화 요구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성남시민연대

지역시민단체들도 보다 못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남시민연대 관계자는 9일 통화에서 “시의원들이 성남시 시민을 위한 시의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당심으로 위장하지 말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준예산 사태를 하루속히 해결하라”고 말했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행정학과)는 “경기도의회의 경우 78대 78로 여야 의원 수가 같은데도 여·야·정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소통해 예산안을 의결했다”며 “상황이 비슷한 기초단체들도 경기도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