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새해 결심, 올해도 영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바트(BART, Bay Area Rapid Transit)라고 하는 장거리 전철이 있다. 코로나 이전 평일에는 약 40만명 넘게 이용했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분주한 교통시스템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바트 이용 고객의 40%가 집에서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또 다른 데이터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 기술 인재의 약 39%가 해외에서 출생한 사람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 언어와 문화가 녹아있는 실리콘밸리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영어)로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40% 정도가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안도감도 생긴다. 10명 중 4명은 회의시간에 알아듣지 못한 말에 얼버무리면서 미소로 답했을 것이고, 입을 열기 전에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머리를 부리나케 돌렸을 것이고, 상대방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 대규모 미팅에서는 손들고 질문하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3년 반전 실리콘밸리로 오기 전까지 나는 30년간의 모든 회사 경력을 한국에서 쌓았다. 대부분 직장인처럼 영어는 늘 뒤통수를 당기는 스트레스였다.

다양한 출신들 모인 실리콘밸리
인구의 40%는 비영어가 모국어
직장인의 영원한 스트레스 영어
절실함·꾸준함이 비법 아닌 비법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거니와(물론 그다지 꾸준히 심각하게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어렸을 때 영어권에서 살았던 친구들이라도 있으면 곧 부러움이 생겼고, 내가 이 나이에 해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생각에 쉽게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다 마흔살 해, ‘내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혀가 굳었더라도 영어를 원 없이 공부해보자, 그래서 네이티브 영어 하는 사람만큼 돼보는 것을 목표로 한번 가보자’는 꿈을 만들었다. 당시 아태지역 화상 회의에서 7분 동안 음 소거를 해놓고도 이를 모른 채 발표를 했던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한 이후다. 그 창피함이 인생 영어공부에 불을 댕겼다.

영어 선생님을 구해 시작한 영어 공부는 현재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좋은 영어 콘텐트들이 있는 유튜브는 그 자체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감되는 유명 영어학원의 스타 강사들의 강의도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양질의 콘텐트 뿐 아니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했다. 맘이 맞는 회사 동료들과 그룹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면서 좀 더 재미가 붙었다. 또 친구들과 그룹채팅방을 만들어 매일매일 영어표현 한 개씩 올리며 서로 독려했다.

직장인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절실함이다. 영어를 정말 향상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어야 공부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달 안에 영어회화 완성, 50일 만에 귀 뚫기 등의 현란한 문구로 혹하게 하는 공부법이 있지만, 영어 공부에 쉽고 빠른 길이란 건 없는 것 같다. 일단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게 언어 능력이다.

몇달 전 회사에서 2박3일 행사를 마치고 팀원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일찍 가서 쉬어요. 피곤하죠(Go home early, You are tired)’ 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후 답장이 왔나 싶어 전화기를 확인하는 순간, 아뿔싸, tired를 fired로 잘못 타이핑을 했던 것이다. 결국 내 메시지는 ‘피곤하죠’가 아니라 ‘당신 해고됐어’였다.

물론 그 친구에게 바로 전화해서 수습을 했다. 최근에는 한 매니저에게 “당신은 팀원들을 참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뜻으로 “You are taking care of your teammate as ‘a human’” 이라고 말했다. human은 외계인 혹은 동물에 상대되는 말로서의 인간을 말하기 때문에 이 경우엔 person을 써야 했다. 그 친구는 내 의도를 알기에 “You mean as a person”이라고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속으론 뜨끔했다.

오늘도 이렇게 실수하고 배운다. 내가 영어 오디오북을 일 년에 60여권 정도를 듣고, 매일 두세 시간을 영어공부에 쏟고 있어도 느는 것이 바로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너 달 만에 만나는 동료들은 달라진 내 영어를 알아챈다.

올해도 한국 직장인들의 1위 새해 결심이 영어공부라고 한다. 언어는 단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만이 해답이다. 새해, 다시 한번 영어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