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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향토색 짙은"호반 문화"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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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안개에 포근히 감싸인 도시 춘천. 적당한 크기의 뜰을 가진 집들에서 피어오르는 낙엽 태우는 내음이 안개 속으로 퍼져 가며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많은 가을 내음에서 부터 춘천은 멋살스러웠던 고장의 역사를 은근히 드러 낸다.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췄다. 이것을 무천이라 했다』고 『삼국지』는 예맥의 풍속을 전한다. 이러한 2천여년 전의 고대 국가 맥이 고도였던 춘천은 그 유구한 풍물의 역사를 그윽히 간직하고 있다.
소양강 맑은 흐름을 타고 펼쳐지는 절경으로 인해 고려조 시인 이자현 으로부터 박항 김시습 성현 이황 김상헌 신위 등 공조 시대의 문인들이 앞다퉈 시문을 남겼던 봄 시내 춘천.
『이제 누가 또 나를 사랑하랴· /시드는 풀잎은 외로와/마지막 손을 흔드는데,/차가울 수록 속살 드러내는/나의 가을 강아./말해다오./들어야 할 모든 귀를 열게/가장 낮은 곳에서부터/천천히 일어서고 있는/한마디 깨끗한 소리를./흔적도 없이 스치는/바람의 깊은 의미를/흔들어다오/어슴푸레 내려앉는 벌판에서/저문 날이 거느리는 막막함의 고요를,/지난여름이 누리던 영화를.』(윤용선의『가을 강』중)
예부터 흘러내리며 풍족한 강의 문화를 가져왔던 소양댐 북한강은 이제 소양댐·의암댐·춘천댐. 화천댐으로 막혀 더 이상 흐름을 멈추고 정체된 채 춘천에 호반 문화를 강요하며 봄 강에서 가을 호수로 빠져들고 있다.
춘천의 근·현대 문단은 비록 짧은 문필 생활이지만 향토성 짙은 소재와 문체로 우리 소설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유정(1908∼1937)으로부터 비롯된다.
29세로 요절, 무지개처럼 나타났다 무지개처럼 사라진 작가란 평을 받는 김유정은 낙향, 금병의숙을 설립해 문맥퇴치 등 농촌계몽 운동과 함께 향토를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펼쳐 이 고장 문학의 지주로 남게 됐다.
현대 소설사의 거목 김유정을 배출했고, 또 예부터 선비 정신이 강해 지금도 인구 18만명에 대학생 2만여 명을 지닌 교육 도시로 남은 춘천의 지적 풍토가 이 고장 문단을 시보다 소설 쪽으로 더 살찌게 했다.
해방 이후 춘천의 교단에 있으면서 시를 썼던 박영희 등의 활동과 함께 1948년 춘천 최초의 문학동인「좁은문」이 결성 됐으나 별다른 활동을 펴보지 못하고 6·25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다.
6·25이후 현 춘천 문단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는 이덕무 이희철 두 시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55년 이후 고등학교 교단에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문학에 대한 열의를 불러일으키며 현 춘천 문단의 초석이 되게 했다.
박재릉·김영기·이승훈·전상국·이무상 등 중앙·향토 문단을 떠받치고 있는 많은 문인들이 이 두 시인 선생 문하에서 배출됐다.
이들 제자 학생들은 59넌「봉의문학회」·「예맥 문학 동인회」등 고교 문학 서클을 결성,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50년대말의 고교생 중심 문학 활동은 60년대 들면서 춘천 사범이 춘천 교대로 승격함과 아울러 문학평론가 박동규씨의 출강과 함께 대학생 문학 서클로 바뀌게 된다.
이때 춘천 교대를 중심으로「오악장문학동인」을 결성, 노화남·한수산·박갑수·김성수·이영세 등과 박민수·윤용서·전태규·김규성·김남호·최종남·최도규·이외수·최돈선·최승호 등이 그 영향권 아래서 앞다퉈 문단에 데뷔, 춘천 문단, 좁혀서 말하면 춘천 교대 문학의 르네상스를 맞는다.
이러한 춘천 교대 문학세는 89년 춘천 교대 출신 문인 40여명으로「석우문인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70넌대 들어오면서 춘천에는 최초의 시동인지『표현』을 시발로 문학동인시대가 열린다. 71년 박민수 윤용선 최경선 등 강원일보 신춘 문예 출신 시인들로 구성된「표현동인회」는 동인지를 9집 발간하며 활동해 왔으나 현재는 휴지기에 빠졌다.
김병기 전상국을 구심으로 하여 전세준 황영창 노화남 최종남 최진택 등 강원일보 신춘 문예 출시 소설가들이 모여 75년 결성한「예맥문학회」는 중소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소설 동인.
현재 동인 16명으로 동인지『예맥문학』을 10집까지 펴내며 소설 전통을 빛내고 있다. 70년대엔 이밖에 수필 문학 동인「호정수필」, 아동 문학 동인「봄내」, 여성문학 동인「청태문학」등이 결성됐으나 동인지를 1∼2집내고 중단되고 말았다.
80년대 들어 결성돼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인들로는「풀무」「풀잎」「춘성문예」등을 들 수 있다. 춘천 YWCA 문예반 모임으로 85년 출범한 여성문학 동인「풀무」는 현재 동인 12명에 동인지를 4집까지 내고 있다.
춘천의 시정을 지켜 갈 튼튼한 초석이 되고자 30대 젊은 시인들로 86년 결성된「풀잎」은 현재 동인 7명으로 동인지를 5집까지 내며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시화전과 낭송회를 틈틈이 개최하며 향토 문단의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춘천시 및 춘성군내 국교 교사들의 모임으로 아동 문학 동인인「춘성문예」는 87년 결성돼 현재 동인 10명으로 동인지를 4집까지 내고 있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에는 따로 문인 협회가 없다. 강원도내 문인들의 결집체인 문협 강원도 지부에 30명 가량 소속돼 전도적인 문학 행사는 물론 춘천시내 문학 행사를 펼치고 있어 독자적인 춘천 문협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행정·교육·문화의 도시인 춘천은 그만큼 시민들의 문화·의식 수준도 높다. 50여명의 시립교향악단까지 두어 운영하고 있는 시가 문학 분야에는 철저히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안개에 휩싸인 호반도시 춘천의 진정한 호반 문화를 꽃 피우기 위해서 문학 분야에의 지원도. 중요하다는 게 춘천 문인들의 지적이다. <춘천=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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