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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남의 속풀이처방

촉법소년, 채찍이 능사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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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형법 9조,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이 조항의 연령대가 만 13세로 개정될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영악함과 범죄행위의 잔인성을 보면 분노가 일어나 처벌을 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으면 더 큰 범죄자가 된다고 어릴 때 범죄자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의견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을 범죄자로 보고 부정적으로 낙인 찍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 행위만을 보고 단정하는 것은 사람이 회생하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가해행위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대부분 결손가정 아이들이거나 학대의 피해자들이다. 처벌 이전에 치유가 필요하다. 학대를 받고 큰 아이들이 갖는 심리적 문제는 여러 가지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배운다. 허락된 행동과 금지된 행동을 익히는 것인데, 이를 사회화라고 한다. 가정환경이 열악하거나 아동학대가 빈번할 경우 사회적 규칙을 무시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사회화 행동장애가 발생한다.

소년범죄 연령 13세 조정
누가 그들에 낙인을 찍나
사회적 학대가 더욱 심각
마더 테레사의 사랑이 답

우리 사회 소년범죄를 다룬 드라마 ‘소년심판’. 김혜수가 주연했다. [사진 넷플릭스]

우리 사회 소년범죄를 다룬 드라마 ‘소년심판’. 김혜수가 주연했다. [사진 넷플릭스]

이런 문제는 처벌로 해결되지 않는다. 학대당한 아이들에게 법적인 처벌을 하는 것은 가정 학대에 이은 사회적 학대, 즉 이중학대를 가하는 셈이다. 자기 존중감에 심각한 훼손을 입으면 미래의 성공은 물론 정신건강을 보장하기 어렵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좌절감은 당연히 범죄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촉법소년이라고 낙인 찍으려는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혐오감을 갖는 순간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된다고.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아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순간 인간에서 괴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선민의식 때문이다. 자신들은 법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이고, 아이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들이라는 차별의식.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불가촉천민을 만들어서 자신들과의 사이에 담을 쌓으려고 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 독버섯은 음지에서 큰다고 한다. 그늘진 곳을 없애는 것이 범죄를 없애는 것이지,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막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원인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무지한 발상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중 하나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조현 지음)에서 소개된 공동체 한 곳이 눈에 띈다. 교도소를 출소한 40여 명이 모여 사는 성모울타리 공동체가 그곳이다. 설립자 하용수 원장 역시 10대부터 소년원에 들어가고, 폭력과 도박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며 살길을 찾아 성당에 갔다가 약물중독에서 벗어났다. 그 후로 터미널 주변을 맴도는 건달들을 모아서 함께 살기로 한 것이 성모울타리 공동체이다.

하 원장은 공동체원들은 사실 정에 굶주려 속정이 훨씬 깊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안병년씨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 공동체에 살다 간 출소자들이 수백 명인데, 하나같이 아기 때 엄마를 잃었거나 버려진 아이들이에요. 만약 엄마만 있었다면 90%는 교도소에 갈 일이 절대 없었을 거예요. 엄마를 잃어서 의지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그리 되어버린 것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따뜻한 가정을 갖기를 원한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따뜻하게 해주면 마음이 풀어진다. 문제아 청소년들을 돌보아 주는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강의 내내 한쪽 아이들은 즐거워하는데 다른 한쪽 아이들은 표정이 없었다. 수사들에게 물어보니 무표정한 아이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고, 표정이 밝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라고 한다. 수사들이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내주니 아이들이 정상적인 상태가 되더라는 것이다.

인도 캘커타에서 사람들을 돌본 마더 테레사 수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자신의 소명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이라고. 촉법소년들, 법이라는 차가운 채찍보다 따스한 손길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