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값 공방 정부­농민 모두 배수진/경제(지난주의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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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매거부 등 조직적 반발분위기 확산/한미 통상마찰 내정간섭 시비로 번져
○농정불신ㆍ불안감 팽배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돼온 것이지만 추곡수매가를 둘러싼 공방전이 올해는 훨씬 길고 뜨겁다.
일단 작년 수매가대로 추곡수매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곳곳에서 수매거부운동이 벌어져 볏단을 태우는가 하면 이장등이 집단사표를 내기도 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가격인상률과 수매량을 얼마로 할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머리를 맞댔지만 아직껏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자리수 가격인상과 6백만섬 수매를 제시한 정부측에 대해 여당에서는 최소한 일반미도 두자리수로 인상하고 수매량도 1천만섬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정의 어려움을 감안한다 해도 정부측이 제시한 수준으로는 도저히 국민들,특히 지역구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평민당ㆍ농협은 20% 내외의 인상률을,재야농민단체들은 그 이상의 인상과 전량수매 등을 요구하고 나서 추곡수매에 대한 입장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농민들로서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국내 농업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데다 농정에 대한 강한 불신감으로 정부의 얘기는 한마디로 「농촌 말살정책」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추곡수매에 관해 가장 큰 관심사는 사실 수매가보다는 수매량에 있다.
몇년째 공급과잉상태에 있고 산지 판매가격이 수매가격을 밑돌게 됨에 따라 정부수매가 일종의 특혜가 되어 버렸고 따라서 추곡수매를 얼마나 배정받느냐에 큰 이해가 걸려 있다. 거꾸로 말해 재정을 집행하는 정부입장에서는 수매가 인상률 보다 수매량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 따라 부담이 좌우된다.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서는 매주 열리는 당정회의에서 8백만∼9백만섬 선에서 수매량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안이 정부안으로 결정된다 해도 국회동의 과정에서 대야 설득,또 농민들의 반발무마 등 앞으로도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방한 미 관리 파상공세
○…지난주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 한미간 통상마찰이다.
지난달부터 한국을 찾는 미 고위관료들이 담당업무에 관계없이 「과소비 억제운동」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섬으로써 「내정간섭」이라는 강한 여론이 일고 있다.
과소비 억제운동이 우리로서는 어느시대나 통용되는 근검ㆍ절약의 미덕을 살리자는 것이 관주도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인 운동이며 더욱이 이로 인한 수입억제 등은 의도하지도,결과로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주장해도 미국측은 도통 믿을 기색이 없다.
미국의 발언등이 「내정간섭」이라 하는 불쾌함은 일단 접어둔다고 생각할때 우리정부로서도 고쳐야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말로만 민간자율을 내세우면서 사사건건 정부가 개입해온 악습이 쌓이다 보니 실제 민간주도로 이뤄지는 운동조차도 관주도로 지레 짐작케한 일은 없는지도 반성해야 한다.
또 대응자세에 있어서도 보다 당당하고 의연해야 「사대」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벗을 수 있다.
미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최대의 수출시장이며,따라서 관계악화는 서로에게 손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은 물론 직시해야 겠지만 아울러 누르니까 되더라는 식의 행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박태욱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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