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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 그 후, 노동개혁 찬반 지상토론] 기업 아닌 국민 볼모로 투쟁…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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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호 14면

SPECIAL REPORT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벌어졌던 화물연대의 파업은 16일만인 지난 9일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한 정부의 강경 대응에 싸늘한 민심이 겹친 결과였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 합의를 파기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개혁의 본격적인 추진 의지를 천명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불러온 노동개혁은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방향은 맞는 것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노동개혁 불가피하다는 한순구 교수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이 최우선 추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진 대통령실]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이 최우선 추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진 대통령실]

가장 격렬하고 심각한 대립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관계가 오래되고 깊을수록 다툼의 소지가 많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경제학에서 ‘홀드 업(hold-up) 문제’라고 부르는 현상이 이런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례다. ‘손들어’라는 뜻의 홀드 업은 경제학 게임이론에서는 더 적극적인 쪽이 불리해져서 상대에게 인질로 잡힌다는 의미로 쓰인다.

사실 다툼을 피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관계를 끊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다툼은 피곤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과정이다. 법적 소송으로 가면 그 비용과 낭비되는 시간 때문에 승패를 떠나서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다툼의 싹이 보이면 그냥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다. 내가 어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시 그 식당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쓸데없이 피곤한 다툼이 원천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어떤 기업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가 10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기업이 업무는 늘리고 급여는 내리겠다고 한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에 안 드는 식당에는 발을 끊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면 된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백명의 근로자들은 이미 10년 넘게 한 기업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필요하지 않은 기술은 새로 배우고 연마하지 않았다. 상이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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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의 근무 태도가 태만하다고 판단되면 모두 내보내고 새로운 노동자들을 고용하면 된다. 원칙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10년간 일하면서 작업에 숙달된 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내면 아무리 젊고 부지런한 노동자들을 새로 뽑는다고 해도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반드시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홀드 업에는 인질이란 의미가 있다. 같이 일해온 기업과 노동자들 사이에는 서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상호간에 인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래 일해온 기업이 고용을 중단하면 해당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오래 일한 노동자가 일을 거부하면 기업은 그런 경험과 숙련된 기술의 노동자를 바로 찾을 수 없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현재 세계 대부분의 정부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혹시 대체할 노동자를 구할 수 있더라도 노동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어렵다.

물론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협력해서 좋은 상품을 생산할 때에는 이런 홀드 업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쁜 때가 있는 법이다. 기업의 요구와 노동자의 요구가 맞지 않아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실력 행사로 힘 대 힘으로 맞서게 되는데 이때 걱정했던 홀드 업 문제, 즉 인질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의 입장에서는 다른 노동자를 구할 수 없는 기업의 약점을 이용해 작업을 중단하고 기업의 이익에 피해를 주면서 노조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히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식이다. 경제학 측면에서 보면 기업 내부에서 기업과 노조가 서로 의견 대립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은 필요한 협상의 과정이므로 정부와 다른 제3자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기업과 노조의 인질극이 해당 기업의 담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협상의 한 방법으로 인질극을 벌일 때는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인질을 잡은 쪽이 유리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노조의 투쟁 방법이 한 기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 경제를 인질로 잡고 협상을 하려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가 경제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노조의 투쟁도 사장실 앞이 아니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노동자들 자신의 생활에 중요한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서 더 큰 인질을 잡기 위한 협상의 기법은 이해가 가는 바이지만, 협상의 당사자도 아닌 모든 국민을 볼모로 잡는 상황까지 확대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제3자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을 앞세우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은 경제학의 원칙에서 찬성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국가 경제와 같은 제3자를 볼모로 해서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은 홀드 업 문제가 도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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