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 아파트 단지. 지난달 말 입주(1419가구)를 시작한 이곳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이대역 중간 지점에 있다. 통상 입주 시기에는 단지 안팎이 시끄럽지만, 이 일대는 한산했다. 이대역 인근에서 영업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살던 집이 안 팔려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어려운 집주인이 전세나 월세로 집을 내놓고 있지만 나오는 집에 비해 셋집을 얻으려는 수요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단독주택 재건축 단지인 이곳에 2억원가량을 투자해 새 아파트 집주인이 된 김모(47)씨는 “이곳 집주인이 경쟁적으로 전세 보증금을 낮춰 세입자를 찾고 있다는 게 중개업소에서 매일 하는 얘기”라며 “전셋값을 더 낮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아실에 따르면 28일 기준 마포더클래시의 전세물건은 629건으로 집계됐다. 입주 직전인 한 달 전(682건)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 현재 마포더클래시의 전세 시세는 전용면적 59㎡가 5억원대, 84㎡의 경우 6억원대다. 59㎡ 8억원대, 84㎡ 11억원대였던 입주 시작 전 전세 호가와 비교하면 크게 내렸다. 입주단지 집주인의 ‘세입자 모시기 경쟁’은 인근 기존 아파트 전셋값도 끌어내리고 있다. 마포더클래시 인근 마포래미안푸르지오 59㎡의 경우 지난 4월 9억 5000만원에 전세계약이 됐는데 현재 호가는 5억 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623가구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힐스테이트홍은포레스트는 293건의 전세 물량이 쌓여있다. 아파트 매매 시장이 빙하기를 맞으면서 집주인이 집 팔기를 포기하고 전세로 내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초 1.00%였던 기준금리가 3.25%까지 오르면서 전세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의 전세 기피 현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연 5~7% 수준으로 지난해 말(3~4%)보다 두 배가량 뛰었다.
지난 8월 아실이 내놓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3만2617건이었는데 3개월만인 지난달 기준 5만742건으로 55% 늘었다. 29일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말 대비 5.23% 하락했다. 지난해 전셋값이 9.61%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전셋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2년인 전세기간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는 경우가 줄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갱신계약 건 가운데 세입자가 갱신권을 사용한 경우는 5171건으로 전체의 41.4%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가장 낮은 비중이고 1월 59.0%에 비해서는 17.6%포인트 감소했다. 부동산R114가 2년 전과 올해 1건이라도 전세 거래가 있었던 서울 아파트 9606개 주택형의 전셋값을 분석(최고가 비교)한 결과, 올해 계약금액이 2년전 계약금액보다 낮은 경우는 1774개로 전체의 18%에 달했다.
내년엔 전셋값 하락세가 더 가파를 전망이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35만2031가구로 올해(33만2560가구)보다 5.9% 증가한다. 수도권 신규 입주 물량은 17만9803가구로 전체 물량의 절반이 넘는다. 올해 전셋값 하락세가 두드러진 인천과 대구는 각각 4만4984가구, 3만6059가구로 2000년 이후 역대 최대 물량이 쏟아진다. 서울 입주 물량도 2만5729가구로 올해보다 더 늘어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전셋값 하락률이 매매보다 더 가파른 상황”이라며 “내년 입주 물량이 많은데 금리까지 더 높아지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