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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예상된 호스피스 병동이라도…간호사가 사망 확인하면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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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조용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기 위해 입원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사가 퇴근한 뒤 환자가 사망할 경우 미리 작성해둔 사망진단서를 간호사가 발급해줘도 될까?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사망진단서를 대리 발급해 의료법 위반 및 위반교사죄로 기소된 경기도 한 의원의 의사 A씨와 간호사 5명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29일 확정했다.

의료법상 ‘사망진단서는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발급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지만, 법정에서 ‘사망 진단은 의사가 직접 해야하는 의료행위’라는 점을 재차 짚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리 써둔 사망진단서 대리 발급은 ‘사회상규’인가

문제가 된 사건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경기도 포천시 한 의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어났다.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암 등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곳으로, 신체 상태의 변화가 크지 않고 사망 원인도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다. 의사 A씨는 미리 진료일지 등에 사망원인을 써두고, A씨가 퇴근한 시간에 환자가 사망할 경우 근무 중인 간호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진단서를 발급하게 했다.

1심 재판부는 의사의 직접 진찰 없이 간호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것은 간호사 면허가 허용하는 의료행위를 넘어선 무면허 의료행위이자 의료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말기암으로 입원 후 평균 3주를 넘기지 못하는, 사망이 어느정도 예상된 환자들이 입원한 호스피스 병동의 특성’을 언급하며 “유족들의 원활한 장례절차를 위해 검안 및 사망진단서를 신속하게 발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 “환자가 10여명에 불과해 의사가 상태를 명확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기재해둔 사망원인이고, 그에 따라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것”이라며 “의사 면허가 없는 자가 의료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지며,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설명했다.

2심은 정상참작…“봉사 위한 호스피스” 선고유예

그러나 검찰이 항소해 진행된 2심은 원심을 깨고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내렸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사망 여부를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행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 있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환자의 죽음이 비교적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돼있는 호스피스 병동의 경우라도 달리 판단될 수 없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의원이 영세해, 현실적으로 의사에게 직접 사망진단과 검안을 강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단속된 후에는 의사가 없을 경우 인근 의료기관을 통해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고 있다”고 짚으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활한 장례절차를 위해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것으로 얻는 이익이, 의사로 하여금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도록 한정해 공중위생의 위해를 막는 이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피고인들이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있고, 호스피스 병동이 봉사활동을 위해 운영되는 점, 이 사건 이후 재발 방지책을 세웠으며 범행으로 취득한 수익이 없는 점, 나이·범행동기 및 결과 등을 참작해 벌금형 선고는 가혹하다고 판단된다”며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은 “간호사의 사망 진단 및 사망진단서 발급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고,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해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의사 A씨는 의료법 위반 교사죄로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간호사 5명은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게 됐다. 선고유예는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나면 형이 면제되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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