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셋값 10% 떨어지면, 4만 가구 보증금 떼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 같은 돌발변수로 올해 하반기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대책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집값 하락과 불어난 민간 부채 등 불안 요소가 쌓여있다. 특히 1000조원을 넘어선 자영업자 대출에서 내년 말 최대 40조원가량의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은행은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2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냈다. 올해 하반기 한국의 금융안정 상황은 ‘위기’ 단계였다. 금융불안지수(FSI)는 레고랜드발 자금경색이 본격화된 10월부터 위기 임계치인 22를 넘어섰다. FSI는 10월 23.6까지 치솟은 후 11월에는 23으로 소폭 하락했다. 해당 지수가 위기 임계치를 넘어선 건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8년 7월~2009년 6월과 코로나 직후인 2020년 4월 이후 처음이다. FSI는 금융 불안 관련 실물과 금융 지표로 산출한다. 단기적인 금융시스템의 불안 수준을 보여준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 규모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 부채) 비율은 올해 3분기 말 223.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기업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기업대출은 1722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5% 늘었다. 한은 이정욱 금융안정국장은  “기업대출은 대체로 만기가 짧아 차환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 9월 말 기준 1014조2000억원으로 1000조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1년 전보다 14.3% 늘었다. 고금리로 증가세가 주춤해진 가계대출(증가율 0.7%)과 정반대다. 빚의 질도 나빠졌다. 금융기관 3곳 이상의 빚을 낸 저소득·저신용 자영업자(취약차주)의 대출 증가율이 18.7%로 비취약차주 대출 증가율(13.8%)을 넘어서고 있다.

한은은 대출금리 상승이 이어지고, 경기 부진과 코로나19 지원책 종료까지 겹칠 경우 내년 말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규모가 최대 39조2000억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진단했다.

본격화하는 부동산 가격 하락도 한은이 주목하는 불안요소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급격한 가격 조정 시 차주의 부실화, 부동산 금융을 제공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보다 대출금리는 2%포인트 오르고, 주택가격이 20% 하락할 경우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고위험가구는 3.3%에서 4.9%로 늘어났다.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도 늘어날 전망이다. 전세보증금이 10% 하락할 경우 보유한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금융기관의 대출을 끌어모아도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하지 못한 가구만 4만4000가구(3.7%)로 집계됐다. 모자라는 금액의 평균은 3044만원이다. 전셋값 하락 폭이 20%로 커질 경우 이런 가구는 7만6000가구(6.4%)로 늘어나게 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악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40% 급락하면 집주인 60.7%만 금융자산을 팔아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할 수 있다. 10명 중 1명(10.9%)은 금융자산을 팔고 빚을 내더라도 보증금 하락분 충당이 불가능했다. 모자라는 금액의 평균은 1억325만원이다

올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은 2696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5.9%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부동산 기업금융의 익스포저는 1074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7.3% 증가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이 116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8%가 불었다. 특히 저축은행과 증권사가 고수익을 좇아 위험성이 높은 건설현장에도 돈을 풀었다. 미분양 가능성이 큰 고위험 사업장 대출 잔액 규모는 지난해 말 15조300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7조2000억원으로 불었다. 저축은행과 증권사의 경우 전체 PF 대출 중 고위험 사업장 대출 비중이 각각 29.4%, 24.2% 수준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