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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발 신용위기 카운트다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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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발 신용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일부 건설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낮추면서다.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강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이전보다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하는 만큼 건설사의 자금 경색은 더 심화할 수 있다.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는 지난 20일 시공능력 8위 롯데건설(A+)과 17위 태영건설(A), 25위 한신공영(BBB+) 등의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들 건설사의 재무 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 신용등급을 강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부동산 PF 부실 우려에 따른 조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1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는 2조4000억원으로 지난 5년간 6배로 증가했다. 롯데건설의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5조8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4배 가까이 늘었다. 우발채무란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혀 있진 않지만, 앞으로 발생할 우발적인 사건에 따라 부채로 돌변할 수 있는 금액이다.

건설사는 부동산 개발 시행사에 보증을 서고(신용 보강), 시행사가 은행이나 채권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개발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하는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보증을 선 부채는 건설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롯데건설은 178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 등 9000억원의 계열사 대출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신용평가사의 평가다. 내년 1분기까지 갚아야 할 PF 우발채무만 3조4000억원에 이르지만, 보증을 선 PF 사업장 중 75.4%는 아직 착공도 못 했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하락이 본격화하고 자금시장 경색으로 금융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개별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떨어진 점 등을 고려할 때, 롯데건설이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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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가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개발 사업으로 이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건설사가 보유한 대표적 위험 자산인 미청구공사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미청구공사는 건설사가 공사 발주처에 청구하지 않은 공사대금이다. 재무제표에는 매출액으로 앞당겨 인식하지만, 향후 공사에 들어가는 원가비용이 늘어나면 손실로 돌변한다.

롯데건설의 미청구공사는 2020년 7040억원에서 지난 3분기 1조6494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태영건설과 한신공영의 미청구공사도 지난해 말보다 각각 33.2%, 84.6%씩 늘어났다.

문제는 건설사에서 시작된 PF발 신용위기가 자금을 댄 증권사와 캐피탈사 등 금융권으로 전이될 위험이다. PF 부실이 촉발한 2011년 저축은행 무더기 영업정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는 데다 미분양이 가파르게 늘면서 건설사의 자금 부담과 PF와 연계된 금융기관의 연쇄 충격이 우려된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는 건설사·금융사뿐만 아니라 일자리 등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초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부동산 PF발 신용위험을 막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정부는 21일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PF 부실 사태 방지를 위해 내년 1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부동산 PF 보증을 5조원 확충하기로 했다. 또 5조원 규모의 미분양 PF 보증을 신설하고, 단기 자금 조달 수단인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장기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사업자 보증도 신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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