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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세상을 바꾸는 콘텐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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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대중의 삶을 조명한 문화 콘텐트를 선정·시상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문화콘텐트비평협회(이하 콘비협)가 개최한 제1회 ‘세상을 바꾼 콘텐츠’ 시상식이다. 2022년 우리나라를 빛낸 문화 콘텐트를 발표했다.

콘비협은 2019년 창립된 비평가 모임이다. 학계와 산업계·언론계에 종사하는 회원 1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총 5개 분야로 나누어 진행되었던 이번 행사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차별에 저항한 콘텐트로, 오페라 ‘순이 삼촌’이 망각을 일깨운 콘텐트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밖에 미래를 꿈꾸는 콘텐트로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넌댄스 댄스’가, 대중이 감동한 콘텐트 분야에서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선정되었다. 주목할만한 비평 분야에서는 영화 ‘수리남’을 비평한 위근우의 ‘리플레이’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22년을 빛낸 문화콘텐트 시상
각종 차별에 맞선 드라마 ‘우영우’
4·3사건 불러낸 오페라 ‘순이삼촌’
소통·공감의 힘 보여준 올 문화계

우리 사회의 각종 차별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우리 사회의 각종 차별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콘비협 임대근 회장은 기념사에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의미 있는 콘텐트를 널리 알리고, 창작자를 격려하며, 신진 비평가를 양성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시상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심사에는 각 분야 전문 비평가와 일반 시민이 참여했다. 올해 첫 행사 수상작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우선 차별에 저항한 콘텐트로 선정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눈에 띈다. 2022년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쥔 이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을 넘어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차별을 다루며 수많은 시청자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에 전국 장애인 차별철폐 시위도 진행되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일상적 행복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는 소통과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

이번 시상 부문에 창작 오페라가 이름을 올린 것 또한 주목된다. 대중예술부터 순수예술까지 수상작을 폭넓게 선정한 콘텐트비평협회의 노력이 돋보인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과 제주시(시장 강병삼)가 공동 제작한 오페라 ‘순이 삼촌’은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현기영 작가의 원작을 오페라로 재조명하며 지난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총 출연진만 200명이 넘는 대형 창작물로서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주축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사하며 호평받았다.

한덕택 서울예대 공연창작학부 교수는 “오페라라는 기본 장르에 충실하며 비극의 현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마주했던 사람들 모두가 참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겪었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망각을 일깨워준 작품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또 “변방의 힘을 보여준 진정성과 묵직한 메시지를 바탕으로 지역을 소재로 한 콘텐트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예술 분야에서 제주 4·3의 평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지난 14일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2024년부터 발행될 역사 교과서에 집필 기준과 편찬 준거에 따라 제주 4·3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권고의견을 제시하였다. 학습 요소나 성취 기준에 포함되었던 기존의 안에서 한 발 퇴보한 모양새다.

이번 교육위원회의 의결안은 역사 교과서에는 실리지만 역사 시간에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으로 제주 4·3 교육이 위축될 우려마저 낳고 있어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망각을 일깨운 콘텐트 분야에 선정된 오페라 ‘순이 삼촌’의 수상이 더 뜻깊은 이유이다.

비평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미추·선악·장단·시비·우열 등을 평가하여 논하는 것을 뜻하고, 평론은 예술 작품이나 문화 현상을 그 가치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평론가 맥스 비어 봄(1972~1956)은 “모든 종류의 것을 거기에 어울리는 이유를 들어서 한꺼번에 칭찬하는 평론가는 그 중의 어느 하나도 좋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훌륭한 연장이 된다. 대한민국의 문화 트렌드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비평을 통해 성장한 문화 콘텐트는 사회적 이슈를 던지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리라 기대한다. 작은 인식의 변화가 큰 흐름을 만든다.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은 어쩌면 우리가 실천하는 작은 변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콘비협의 바람대로 세상을 바꾸는 콘텐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실현하는 건전한 문화 실천의 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