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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92% 인플레, 잠시 잊는다…'축구의 신'이 고마운 아르헨

중앙일보

입력

18일 월드컵 우승 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오벨리스크 앞에서 팬들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 월드컵 우승 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오벨리스크 앞에서 팬들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참한 일상을 잊게 해준 우승"

18일(현지시간) 2022 카타르 축구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꺾고 36년 만에 우승컵을 차지한 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1월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0.9%(12개월 누적)로 시작했다. 지난달엔 92.4%까지 치솟았다. 최근 유로존 상승률(10%)의 10배에 가깝다. 지난달 상승 폭이 둔화하긴 했지만, 연말까지 100%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1월 배추 한 포기를 살 수 있던 돈으로 이달엔 반포기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회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예산 삭감 계획에 반발해 시위를 하던 중 마라도나의 벽화 앞에 서 있다. 18일 아르헨티나는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살인적 물가로 인해 경제 상황은 날로 악화 중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회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예산 삭감 계획에 반발해 시위를 하던 중 마라도나의 벽화 앞에 서 있다. 18일 아르헨티나는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살인적 물가로 인해 경제 상황은 날로 악화 중이다. AFP=연합뉴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에두아르도 오르테가는 사람들이 사가는 양이 반으로 줄었다며, "과일 한 개가 지금은 '반개'가 됐다. 작년부터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생활고를 못 이긴 시민들이 식료품점에 "상한 채소"를 얻으러 온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살인적인 물가로 인한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은 40%에 달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날 우승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경기를 지켜본 디에고 아부질리(46)는 로이터에 "국가대표팀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아르헨티나의 7경기를 모두 관전한 에밀리아노 피아노(41)는 이번 월드컵이 사실상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의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점 때문에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도 수천 명의 아르헨티나인이 카타르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에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마침내 세계챔피언 메시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메시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19일 오후 9시(아르헨티나 시간, 한국이 12시간 빠름)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세이사공항에 도착해 휴식을 취한 후, 이튿날 오전부터 축하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한동안 아르헨티나는 축제에 젖을 것으로 보인다. 피아노는 "(월드컵 우승이) 아무것도 해결하진 못하지만, (축구로) 하나가 됐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은 늘 살인적인 물가와 함께 찾아왔다.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궜을 때는 176%, 두 번째로 우승한 멕시코월드컵이 열린 1986년엔 116%를 기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인플레 100%'는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경제가 더 망가졌다. 내년 대선이 치러지는 가운데, 이미 가뭄으로 타격을 입은 농작물 수급 차질과 원자재 수출 분야까지 영향을 끼쳐 불확실성은 가중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러나 축구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어도, 월드컵 우승으로 얻은 희망과 자부심은 아르헨티나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도 있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아르헨티나는 수년째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가스와 화석연료 자원 덕분에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파타고니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셰일가스 매장지이며,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매장량도 풍부하다. 앞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 주요 리튬 생산국이 뭉쳐 '리튬 오펙'을 결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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