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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사시 한반도 반격'에 한국 "동의 구하라"…관건은 미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이 북한의 도발 등에 대응해 한반도를 향한 '반격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가운데, 한국이 유사시 어느 선까지 사전 협의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미국이 일본의 안보 전략 대전환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힌 가운데 당사국인한국이 관련 논의의 주변부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임시 각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FP.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임시 각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FP.

'사전 동의' 여부 엇박자

일본이 지난 16일 각의에서 결정한 국가안보전략에 명시한 '반격 능력'은 적이 일본에 대한 공격에 착수했다고 판단될 때 상대의 미사일 기지 등을 타격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한반도 상황에 대입하면 지난 10월 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넘어가는 탄도미사일을 쏘는 등 올 한 해 전례 없는 도발을 감행한 북한이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실제 일본은 개정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을 "종전보다 더욱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관건은 일본의 실제 반격 상황과 관련한 한·일의 온도차다.

외교부는 지난 16일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 선언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대상 반격 능력 행사와 같이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에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반격 능력 행사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며 다른 국가의 허가를 얻을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양국 외교 당국의 엇박자 속에 18일 대통령실은 "(한반도에 대한 반격능력 행사는)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이라는 큰 틀 속에서 논의가 가능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이어 이튿날인 19일은 "당연히 사전에 한국과 긴밀한 협의나 동의가 필요하다"며 전날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내놨다.

이러한 입장차와 관련, 외교가에선 "헌법에 따라 북한을 한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한국과, 남북한을 별개의 실체로 보는 일본 간 인식 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965년 한ㆍ일 기본 조약 체결 때부터 '한국 정부가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 정부'(3조)라는 대목의 해석을 놓고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있었다"며 "북한을 한국과 별도의 국가로 인식해온 일본 입장에선 북한의 공격이 현실화했을 때 자체 판단에 따라 반격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중앙DB.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중앙DB.

"결국 한ㆍ미ㆍ일 협력이 중심"

한ㆍ일 양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교집합으로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유사시 일본의 반격 능력 사용에 대한 사전 승인은 사실상 한ㆍ미ㆍ일 3국 차원에서 이뤄질 거란 분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일으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무력 분쟁과 관련 한ㆍ미 동맹, 미ㆍ일 동맹의 의사결정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사실상 미국"이라며 "한반도에 유사 사태가 벌어지든 대만 해협에 위기가 발생하든 한ㆍ미ㆍ일 협력을 주축으로 인도ㆍ태평양 지역이 사실상 하나의 전구(戰區)로서 공동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ㆍ일이 반격 능력을 놓고 개별적으로 소통을 하느냐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을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양국이 갈등 전선을 넓히기보다 일본이 반격 능력 행사 필요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충분한 정보 공유와 사전 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미ㆍ일이 업그레이드한 동맹을 기반으로 한반도 군사 개입 가능성을 논의할 때 한국이 관련 소통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ㆍ미ㆍ일 정상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회담에서 3국이 북한 미사일 관련 경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정보 공유 관련 구체적 협의는 이르면 다음달 시작된다. 현재 종료 유예 상태인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를 정상화해 안정적으로 운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日, 한국 패싱하면 자충수"

일본의 입장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를 거쳤던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군사 개입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한국내 정치적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 선언을 두고 "유사시 한반도에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이자 주권적 영토에 대한 침략 의지"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이번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거나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 한반도 반격이 가능하다고 공개 언급한 건 자충수"라며 "일본의 방위력 강화도 결국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을 기반으로만 가능하고 북핵 대응도 한국과 공조 없이는 불가능한데 자꾸 한ㆍ일 관계를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자국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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