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銀 700억 횡령' 수상한 거래 눈감고…성과급 챙긴 증권사 조력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5월 공분을 일으켰던 우리은행 직원 700억원 횡령 사건. 은행원의 간 큰 범죄의 조력자들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일 주범 전모(43·구속 기소)씨의 횡령을 도운 혐의(금융실명법·범죄수익은닉법 위반)로 Y증권사 직원 A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전씨의 수상한 거래를 알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에다.

우리은행에서 8년간 8차례에 걸쳐 회삿돈 707억 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직원 전모씨가 지난 5월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우리은행에서 8년간 8차례에 걸쳐 회삿돈 707억 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직원 전모씨가 지난 5월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원래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이던 전씨는 2012년 6월~2020년 6월 우리은행이 관리중이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614억5000만원,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천공장 매각 계약금 59억원, 우리은행이 관리하던 다른 회사의 출자전환 주식 42만9493주 등을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전씨는 회사 직인을 도용하거나 공·사문서를 위조했고, 심지어는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도용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전씨는 이 돈을 Y증권사에 개설한 자신의 증권계좌에 넣었다 뺐다른 반복했다. 입급 방식은 100억원, 60억원짜리 등 초고액 수표였다.

하루 100억 거래, 의심했지만 잠잠했던 경보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씨의 계좌를 관리하던 담당자인 A씨는 원칙대로라면 전씨의 개인 거래 내역을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했다. 전씨의 범행 전말까지는 몰랐더라도 거래중인 재산이 불법이라고 의심할만한 합당한 근거 등이 있을 때나 현금으로 하루 1000만원 이상 입출금할 때 금융기관 직원은 관련 내용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심거래보고제도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이런 의무를 외면한 채 전씨의 범행을 되레 자신의 성과급을 불리는 기회로 삼았다. 전씨가 회삿돈을 쉽게 빼돌릴 수 있도록 차명 계좌 11개를 개설해 준 것이다. A씨는 이렇게 차명 계좌 개설 대가로 전씨에게서 1억원을 챙기는 한편, 전씨를 VVIP 고객으로 관리하며 사내에서 수억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증권사도 VVIP 고객인 전씨를 프로 골퍼들과 라운딩을 함께하는 해외프로암 골프 대회에 초대하는 등 A씨의 불량 양심을 키운 측면이 있다.

은행·금감원, 계약금 소송 패소로 인지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이준수 부원장이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 직원이 약 707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대한 잠정 검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이준수 부원장이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 직원이 약 707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대한 잠정 검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와 전씨의 거침없는 질주는 은행의 시스템이나 제도가 아 우연한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전씨가 횡령한 돈이 하필 이란의 명문가인 다야니 가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돈은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이 2010~2011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합병하기 위해 낸 계약 보증금이었는데, 인수·합병 무산을 이유로 이 돈을 다야니 가문에게 돌려주라는 2018년 6월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 판정부의 결정에 이어 이 결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취소 청구를 기각하는 영국 법원의 판결이 2019년 12월에 나오자 우리은행은 뒤늦게 이 돈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금융권에서는 아무리 제도를 보완해도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를 원천 봉쇄하기는 어렵다는 자조적인 말들이 나온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2021년 고액현금거래보고 누락 건수는 총 4만1511건에 달한다. 한 해 평균 1만 건 이상의 의무 위반 행위가 발생하는 셈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700억원 정도면 은행 입장에서는 소액으로 취급되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 대한 교육과 조직관리가 중요한 이유”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