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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을 원래 이름 '두험천'으로…1600년대 문헌에도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의정부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며 서울로 들어가는 ‘중랑천’의 옛 이름은 두험천(豆險川 또는 豆驗川)입니다.”
지난 11일 중랑천과 인접한 의정부시 금오동 의순공주 묘역에서 만난 향토사학자 유호명(62·경동대 대외협력실장)씨의 설명이다. 의정부 토박이인 유씨는 지난 5월부터 시민들과 지역 역사현장을 탐방하면서 몰랐거나, 잘못 알려진 지역사를 발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뒷줄)씨가 지난 9월 3일 의정부시 용현동 소재 충의공 정문부 장군 묘에서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 진행하고 있다. 사진 의정부문화원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뒷줄)씨가 지난 9월 3일 의정부시 용현동 소재 충의공 정문부 장군 묘에서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 진행하고 있다. 사진 의정부문화원

“두험천은 1600년대부터 역사 문헌과 고지도에 등장”  

유씨는 “양주 불곡산에서 발원해 의정부를 거쳐 서울 한강으로 흘러드는 ‘중랑천’ 이름은 역사성이 부족하다”며 옛 이름인 두험천으로 바꾸자고 시민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그는 “중랑천이 20세기 들어 등장한 데 반해 두험천은 1600년대부터 역사 문헌과 여행기, 대동방여전도(1849년 제작) 등 10여 개의 고지도에 등장한다”며 “내년에 시 승격 60주년을 맞는 의정부시가 지방자치 강화의 한 방편으로 지명 회복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를 진행하는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가 지난 11일 의정부시 소재 의순공주 묘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를 진행하는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가 지난 11일 의정부시 소재 의순공주 묘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유씨는 지역의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매달 두 차례씩 의정부 역사 현장을 시민 30여 명과 탐방하며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의정부’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가 430년 전인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유씨, 의정부 지명 연원도 임진왜란 초기로 204년 앞당겨  

그동안 의정부 지명이 시작된 연원은 226년 전인 1796년(정조 20년)으로 간주돼 왔다. 이는 당시 승정원일기의 ‘양주 직곡평과 의정부평(議政府坪)으로 달려가 농사를 살폈다’는 내용을 역사에 나온 의정부 지명에 대한 첫 언급으로 파악해 왔었기 때문이다. 7년째 향토 역사 공부에 매진하던 유씨는 지난해 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10월 29일 의정부시 의정부2동 백석천 근린공원에서 신시가지 건설 기념탑을 방문해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 진행하고 있다. 사진 의정부문화원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10월 29일 의정부시 의정부2동 백석천 근린공원에서 신시가지 건설 기념탑을 방문해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 진행하고 있다. 사진 의정부문화원

그는 “월사 이정귀(李廷龜)가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쓴 ‘임진피병록’에서 ‘의정부장’(議政府場)이란 지명을 사용한 것을 확인하면서, 의정부 지명이 시작된 연원을 기존보다 204년 이전으로 앞당겼다”고 소개했다. 유씨는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 2월 의정부 역사·문화 수필집 ‘1960년생 토박이의 의정부를 담다(의정부문화원)’를 출간하기도 했다.

유씨가 의정부문화원 주관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 이야기’ 지역 역사 탐방은 현장 역사 인문학 강좌로도 관심을 끈다. 매회 10㎞ 정도씩 걸으며 구석구석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현장에서 설명하는 인문학적 역사해설 프로그램이다.

유씨는 “의정부문화원과 함께 도서관이나 가정집 서가에 꽂힌 채 읽히지 않고 박제화되는 역사책의 한계를 극복할 목적으로도 기획했다”며 “지역 역사를 책이 아닌 현장에서 보고 듣게 하면, 시민들에게 생생하게 이해를 돕고 애향심도 돋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달 두 차례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 이야기’ 역사 탐방  

유씨는 시민과의 역사현장 탐방에서 자신이 찾아낸 역사적 사실을 소개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다양한 테마를 정해 운영한다. 현장 답사과정의 에피소드까지 소개하며 시민들에게 인문학적 역사 탐방기회를 선사하고 있는 것. 의정부의 가장 오래된 지명 ‘녹양’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간 연고권 다툼 없는 류득공, 자일동 비석거리, 가능동의 국내 첫 촛불문화제, 비석을 통한 갈립산(천보산) 지명 확인, 현장에서 확인되는 양반가의 분재(分財), 의정부 소풍길에 대한 제안, 역사 인물들의 러브스토리 등이 주요 테마다.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를 진행하는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가 지난 11일 의정부시 소재 의순공주 묘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의정부 지역사 인문학 강좌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이야기’를 진행하는 의정부 향토사학자 유호명씨가 지난 11일 의정부시 소재 의순공주 묘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유씨와 의정부문화원은 “지역의 숨은 역사를 찾아내 시민들과 공유하고, 시민들에게 고장의 생생한 역사 전달로 애향심을 고취하는 일에 보람이 크다”며 “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 이야기’ 프로그램을 내년에는 확대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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