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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대차·KT·네이버…RE100기업 절반은 신재생에너지 구매 '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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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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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 25곳 중 절반은 재생에너지 구매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 신재생에너지 전환·탄소감축 등으로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KT·네이버·삼성SDI 등도 포함 #신재생 전환 선언 불구 국내 이행 없어 #“국내 인프라 미비해 해외부터 시작”

중앙일보가 12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전력공사·한국에너지공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RE100 가입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 실적 자료’를 분석했더니 25개 기업 중 13곳은 재생에너지 구매가 전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공급인증서(REC) 구매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한 곳에 불과했다. RE100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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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RE100 이행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직접 발전 ▶추가 요금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간주하는 ‘녹색 프리미엄’ ▶REC 구매 ▶전력거래계약(PPA) 등으로 이행된다. 다만 직접 발전은 효율이 낮아 나머지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RE100 가입 기업 중 현대자동차·KT‧네이버‧삼성SDI‧KB금융 등 13개 기업은 올해 녹색프리미엄·REC·PPA 등의 구매 실적이 ‘0원’이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언했지만 실제 이행 시도는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 재생에너지 비용이 비싸고 인프라가 미비해 해외사업장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도 “국내에선 재생에너지 수급이 쉽지 않다. 목표 기간이 남은 만큼 계획을 세워 준비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나머지 대부분은 ‘녹색 프리미엄’을 구매했는데, 이 제도를 선호하는 건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녹색 프리미엄은 평균 입찰가가 ㎿h(메가와트시)당 1만원 선으로 REC(1REC=1㎿h)의 6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정받지 못해 전문가들은 미국·유럽 등이 탄소세를 도입할 경우 제품 수출에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해 사용 전력보다 50% 많은 녹색 프리미엄을 구매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전이 발발하면서 시장이 급변해 결과적으로 필요보다 많은 녹색 프리미엄 구매했다”고 말했다. 초과 구매분은 내년으로 이월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REC를 구매한 LG엔솔은 REC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거래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LG엔솔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REC를 구매했다”며 “REC는 발전사업자가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데, 상당량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사 모으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된 PPA의 경우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먼저 PPA와 현물시장 가격 격차가 커, 발전사업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또 PPA 거래 때 한전의 전력망 사용 수수료가 발생해 가격 경쟁력도 없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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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시장이 열악한 데다 목표 기한이 20년 이상 남아 기업의 이행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당혹해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신재생에너지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낮춘 것도 기업들에는 혼선이다. 앞서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만3096GWh(기가와트시)인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제철 등 산업용 전력 사용 상위 10개 기업의 사용량(6만5351GWh)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의 RE100 선언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 폭등이 예상되는데, 정부 정책은 뒷걸음질 쳤다”며 “RE100 선언 당시와 재생에너지 계획 예측이 달라져 전환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근 의원은 “한국은 유럽·호주 등에 비해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며 “국내 기업의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게 현실적 방법”이라며 “2024년 도입 예정인 재생에너지 중앙경매시장이 활성화하면 발전사업자의 과다이윤이 줄어 에너지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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