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안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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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옛날 시인이나 소설가는 안개를 『뽀얀 젖빛」에 비유했다. 춘원(이광수)은 그의 소설 『흙』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가 안개』라고 예찬했다. 어머니의 품속 같다는 얘기다. 안개는 그처럼 부드럽고,유순하고,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연의 선물로 여겨졌다.
『퍼런 안개』니 『엷푸른 스카프같은 안개』,『산뜻하고 매끄러운 감각의 안개』라는 표현 역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들이 찾아낸 수식어들이다. 중국의 시인들이 노래한 자하도 바로 푸른 안개라는 뜻이다.
요즘 서울 하늘을 쳐다보면 그런 안개는 옛날 얘기다. 어쩌면 그렇게도 더럽고 칙칙하고 절망적인 색깔로 채색되었는지,서울의 안개는 우리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그전에 고원 시인은 런던의 안개를 보고 나서 『계엄령을 선포한 점령군같다』는 표현을 했었다. 꼭 그런 안개가 요즘 서울의 아침과 서울의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무슨 악령의 그림자처럼 음산하게 우리의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서울을 세계 세 번째로 아황산가스가 많은 도시로 지적했었다. 중국의 선양,이란의 테헤란 다음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LA는 공해오염도시로 이름난 곳이다. 서울의 아황산가스는 바로 그 LA의 69배나 된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일산화탄소는 동경의 3배. 가스만이 아니다. 먼지는 동경이나 LA의 2∼3배. 모두 지난 여름의 자료다. 필경 겨울철은 더하면 더했지,덜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런 자료들의 신빙성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국회에 낸 자료에서 대기오염치를 축소,보고해 말썽이 되었다. 우리가 겉으로 알고 있는 오염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실상은 과연 어떤지 공포심마저 갖게 된다.
우리가 걱정하고 절규해야 할 문제는 바로 그런 한가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공해대책이다. 한때는 환경담당관리들이 공해업소에 나갈 때면 친절하게도 미리 전화를 걸고 행차한다는 가십도 있었다. 우리의 환경은 이제 걱정을 넘어 생명보존의 문제로 다루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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