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 코치, 아니 내 친구 태욱아! 정말 고생 많았다" [이천수의 호크아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표팀 막내 시절 이천수(왼쪽)와 최태욱. 동갑내기인 둘은 라이벌이자 동반자다. 중앙포토

대표팀 막내 시절 이천수(왼쪽)와 최태욱. 동갑내기인 둘은 라이벌이자 동반자다. 중앙포토

 한국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 막내인 최태욱 코치는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의 숨은 주역이다. 최 코치는 지난 4년간 궂은 일을 자처했다. 막내 코치는 코치진에서도 일종의 '특수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데, 실상 하는 일은 가장 많다. 여느 팀에서 그렇듯 전술이나 전력은 짜는 데 큰 기여를 하진 못한다. 이 분야는 파울루 벤투 감독과 세르지우 코스타 코치 등 포르투갈 출신 코치들이 주로 머리를 맞댔을 것이다. 최 코치 입장에선 이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다.

대신 최 코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다. 최 코치는 당시 경험을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태극마크를 월드컵 무대를 밟아본 선배 만큼 후배들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큰 경기를 앞둔 선수에게 같은 무대에 섰던 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것 만큼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그건 벤투 감독도 도울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아는 최 코치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서 함께 뛰는 동료들에게 에너지를 준다. 자신감은 선수와 팀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확정 후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최태욱(가운데) 코치. 연합뉴스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확정 후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최태욱(가운데) 코치. 연합뉴스

카타르 현지에서 대표팀 훈련을 준비하는 최태욱 코치. 연합뉴스

카타르 현지에서 대표팀 훈련을 준비하는 최태욱 코치. 연합뉴스

한국인 코치라서 선수단과 코치진의 가교 역할도 했다. 그라운드에선 주장 손흥민과 벤투 감독이 있었다면, 일상 생활에서 선수들이 친형처럼 의지한 건 최 코치였다. 이처럼 한국이 16강에 오르는 데 최 코치의 역할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전국팔도의 K리그 경기장을 누볐다. 대표팀에 꼭 필요한 자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표팀 훈련 중 선수가 한 명 부족할 땐 그라운드에 투입돼 헐떡이며 뛰는 '깍두기'로도 활약했다. 정말 고마운 존재다.

최 코치를 보면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그와 나는 1981년생 동갑내기다. 1997년 부평고 축구부에서 처음 만나 지난 20년간 같은 길을 걸어온 라이벌이자 동반자다. 고교 입학 당시 최태욱은 또래 중 '랭킹 1위'였다. 워낙 실력이 좋아 입학과 동시에 3학년들과 뛰었다. 부러웠다. 자극도 됐다. 자존심 때문에 궁금해도 이것저것 물어보진 못했다. 대신 멀리서 최태욱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했다. 덕분에 나도 1학년 여름방학부터는 주전으로 올라섰다. 1999년 춘계연맹전, 백운기, 대통령금배 등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손흥민(왼쪽)과 나란히 선 최태욱 코치. 그는 주장 손흥민과 함께 선수단의 '큰 형님'이었다. 연합뉴스

손흥민(왼쪽)과 나란히 선 최태욱 코치. 그는 주장 손흥민과 함께 선수단의 '큰 형님'이었다. 연합뉴스

2000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는 나란히 19세의 나이로 3~4세 위 선배들이 주축을 이룬 올림픽팀에 발탁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도 들어 형들과 함께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경험했다. 당시 최태욱은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모든 감독이 탐내는 특급 유망주였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도 힘을 냈다. 최태욱이 없었다면 당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도 없었다.

은퇴 후에도 최태욱이 먼저 지도자를 하며 앞서갔다. 동기부여가 됐다. 이달 말 드디어 P급(최상위) 지도자 자격을 얻는다. 프로팀 감독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최태욱과 함께 뛰었던 고교 시절이 참 즐거웠다. 프로 무대에서 그와 감독 대 감독으로 지략 싸움을 펼칠 날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내 친구 태욱아, 지난 4년간 정말 수고 많았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아 기쁘다. 그리고 축하한다. 조금만 쉬고 다시 달리자, 함께.

현역 시절 힘 합쳐 그라운드를 평정했던 이천수(왼쪽)와 최태욱. 이번엔 지도자로 라이벌전을 준비 중이다. 중앙포토

현역 시절 힘 합쳐 그라운드를 평정했던 이천수(왼쪽)와 최태욱. 이번엔 지도자로 라이벌전을 준비 중이다. 중앙포토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자,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 프리킥 골의 주인공인 이천수가 2022 카타르월드컵 주요 인물 및 경기 분석을 중앙일보에 연재한다. '호크아이(Hawk-Eye)'는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전자 판독 시스템의 이름이다. 축구 지도자 자격증 중 가장 급수가 높은 P급 자격증 취득을 앞둔 이천수는 매의 눈으로 경기를 분석해 독자에게 알기 쉽게 풀어드린다. 촌철살인은 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