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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채 한도 확대 부결 후폭풍…전기요금 대폭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전력공사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법안이 국회에 발목 잡히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눈덩이’ 한전 적자를 막아야 하는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한 주택가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서울 한 주택가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ㆍ한전 등 관계 기관과 공동으로 ‘한전 재무위기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박일준 산업부 제2차관은 “한전의 재무위기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한전도 자체적인 유동성 확보 노력을 지속하면서 당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 건전화 자구 노력 계획 등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전은 한전채 발행 외 기업어음, 은행 차입 등 유동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금융권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전기요금 인상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채 발행 한도가 확대되지 않는다면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이달 20일 이후 기준연료비 인상안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한전법 부결 영향 등을 고려해 인상 폭 조정을 관계 기관과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현행 2배에서 5~6배로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상임위원회를 이미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서 뒤집혔다. 반대표(재석 의원 203명 중 61명)가 대거 나오면서다. 반대 의원 대부분은 민주당 소속이었다. 올해 30조원으로 예상되는 한적 적자를 회사채 발행으로 메우려던 정부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는 즉각 반발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법안 재상정에 나섰다. 8일 오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개정 법안(5~6배)보다 더 높은 7배로 확대하는 내용의 한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달 내 법안을 재상정하고 다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말 얽히고설킨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당장 부결안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치솟는 연료비에 비해 더디게 오르고 있는 전기요금 탓에 올해 한전 적자는 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손실과 운영비를 충당하느라 발행한 한전채 규모는 연말이면 72조원으로, 법으로 정한 한도(자본금과 적립금 합산액의 2배)를 넘어선다. 법을 개정해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는다면 내년 3월 결산 정산 이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진다. 자산 228조원(올 9월 말 기준)의 국내 최대 공공기관인 한전이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야당은 “전기요금을 올려 적자를 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는 이달 말 전기요금 추가 인상과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 수십조원 규모의 적자를 메울 수준은 못 된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한전이 흑자로 전환하려면 kWh(킬로와트시)당 116원(올해 평균)인 전기요금을 50원 이상 더 올려야 한다. 하지만 연료비 연동제 상한, 물가 상승 부담 등으로 한꺼번에 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정부와 한전이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 무산에 따른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은 크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한 번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나, 외부에서의 자금 조달 수단이 제한되면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자체적인 현금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 폭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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