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한은 중국의 번견(番犬)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북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관계를 꼽으라면 북‧중 관계도 그 중 하나일 게다. 북‧중은 필요하면 서로를 선혈로 맺어진 ‘혈맹(鮮血凝成)’ 관계라고 추켜세운다. 주로 미국에 공동 대응할 때 사용한다. 그러다가도 우리가 언제 그랬냐며 서로 으르렁거릴 때도 많다. 1400Km의 결코 짧지 않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복잡한 사연 또한 얼마나 많겠나.

북한과 중국은 진정 어떤 관계일까? 겉으로 표방하는 ‘혈맹’, ‘순망치한(脣亡齒寒)’,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일까? 아니면 국제정치학자들이 분석하는 서로에게 필요한 ‘전략적 자산’일까? 북‧중 관계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더라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면 좋겠다. ‘얼굴을 붉힐 수는 있어도 아예 등을 돌릴 수는 없는 관계’라는 점을 말이다.

중국 믿지 말라는 북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중국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당부가 뜻하는 건 앞으로 중국을 상대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란 것을 끊을 수 없으니 그럴 바에는 ‘마음을 주지 말고 중국을 잘 활용하라’는 의미다.

이 얘기는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1972년의 닉슨 방중과 1992년의 한‧중 수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북한에 한마디로 ‘쇼크’ 그 자체였다. 북한은 이 같은 일을 겪으며 중국이라는 나라는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북한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필자는 북한의 고위 관리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불만을 들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맨 정신으로 말하기는 불편했는지 술이 여러 잔 들어간 이후 그때서야 털어놓기 일쑤였다. “중국은 북조선에 죽지 않을 정도만 지원합니다” “남조선은 좋겠어요. 든든한 큰집(미국)이 있잖아요. 우리 큰집(중국)은 영~ 아닙니다.”

북한을 번견 취급하는 중국

북한 관리들은 미국과 중국을 큰집으로 부르는데 스스럼이 없었는데 미국이 지원한 남한과 중국이 지원한 북한을 비교하면 속이 터진다는 이야기였다. ‘남 탓하기’에 이골이 난 북한 관리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중국에 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또 중국 관리들끼리 모여 북한을 ‘번견(番犬)’이라고 비웃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번견은 집을 지키거나 망을 보는 개를 말한다. 북한을 개 취급하는 것인 데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중국은 왜 북한을 번견이라 부르나.

중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 외교의 90%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미‧중 갈등이 고조돼 군사적으로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과 직접 대결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럴 때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번견처럼 미국에 짖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개에게 먹이를 주듯 중국이 북한에 지원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최근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북한은 지난 9월 25일 미사일 도발을 시작으로 두 달 넘게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례적이다. 그것도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도중에 도발을 감행했다. 과거엔 한미연합훈련 이전이나 이후에 일회성 정도로 그쳤는데 말이다.

더 놀라운 건 미사일을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속초 앞바다에까지 낙하시킨 점이다. 북한 미사일이 NLL 이남에 떨어진 것은 정전 이후 처음이다. 북한 국방성은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를 포함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이라는 설명까지 내놓았는데 예전과 비교하면 너무 위험하고 무모한 도발이었다.

미사일 쏘자 쌀 전달

한데 그 배경과 관련해 바로 중국이 북한을 번견으로 이용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물론 북한이 언제나 중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니다. 북한은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전략적 환경이 악화하더라도 남의 말을 듣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공교롭게도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불만과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겹친 듯하다.

결과적으로 그와 같은 번견 노릇에 대한 대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중국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들어가는 열차 안에는 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다고 한다. 북한은 올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한 톨의 쌀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다. 지금은 중국의 지원이 북한에 너무나 절실한 때인 것이다.

그럼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도 북한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다. 리란칭(李嵐清) 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조선의 위장에는 걸신이 들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걸신(乞神)은 빌어먹는 귀신을 말한다.

리란칭은 1997~2002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를 정도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애장(愛將)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리란칭의 말은 그가 국무원 대외경제무역부장(현 상무부장, 1990~1998) 시절에 한 것으로 당시 대외경제무역부가 대북 원조를 담당한 부처였다. 리란칭은 북한에 경제 원조를 아무리 많이 해도 북한은 늘 만족하지 않고 계속 요구한다며 한탄조로 말한 것이다.

미중과 북중 관계 함수

북한은 중국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해준다며 불만이 있고, 중국은 아무리 북한의 뱃속에 밀어 넣어도 바닥이 드러난다며 한숨을 쉬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 70여 년간 제공한 대북 원조액을 모두 합치면 북한을 하나 더 만들 수 있다는 말도 한다. 표현이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중국은 그만큼 자신의 대북 원조가 막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이 죽지 않을 정도를 지원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북한을 잘 다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중국에 기대고 싶지 않은 마음은 꿀떡 같다. 그래서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과 수교하면 더는 중국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될 리 없다.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한국전쟁을 벌인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쳐다본다. 결국 북한은 미‧중 관계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북‧미 관계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북한은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미국과 대화하면서 북‧미 수교는 천천히 하더라도 일부 경제 제재만이라도 먼저 해제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북한의 예상보다 높았다.

북한은 일부 경제 제재만 해제되면 중국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기술은 없어도 당장 허기를 면할 기술과 노동력 정도는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이 물거품이 되고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내부의 친중파들에게 ‘빌미’만 제공하게 됐다. 다시 중국으로 유턴해야 한다는 압력 말이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