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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안전운임제 객관적 진단 통해 합리적 중재자 역할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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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04면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에 전면적인 노정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화물기사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상황을 정권의 권위나 정체성과 연결해 생각하는 데다 여야 대치 상황의 정치적 배경도 있어 강경대응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기 종결의 여지도 사라진 건 아니다. 서울시 산하인 서울교통공사의 파업은 교섭 타결로 마무리된 것처럼 중앙정부가 사안별로 쟁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파업 사태는 정치 문제가 아닌 분야별로 각각의 사안이 되고 실마리도 풀릴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진로하이트 하청노동자, 화물연대의 1차 파업도 초반의 강경대응 방침에도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라는 성격에 주목해 정부가 조정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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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보수정권의 친기업, 시장자유주의 정체성과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각해진 분배의 왜곡현상을 바로잡을 포용적 정책을 조화시킬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대선 당시 ‘공정과 상식’을 강조한 공약은 ‘시장에 맡겨라’라는 신자유주의로의 복귀라기보다 포용적 성격을 띤 시장자유주의다. 포용의 정도와 수준이 어디까지이고 과연 분배의 왜곡현상을 얼마나 바로 잡을지가 문제다. 이 파업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결방안도 다르지 않다. 강경대응인지, 실사구시인지 선택지가 열려 있고 그 향배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성격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지금 파업사태를 진단하려면 지난 6월로 돌아가봐야 한다. 정부 출범 1달 만에 벌어진 대규모 파업과 물류 중단 사태는 8일 만에 타결됐다. 당시 우려했던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합의가 문제였다. 안전운임제의 상시 제도화(일몰제 폐지)와 적용 확대를 검토한다고 받아들인 화물연대와는 달리 국토교통부는 기존 제도의 한시적 연장으로만 축소 해석해 2차 파업사태까지 이어졌다. 법안 개정 시한을 한 달여 앞두고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  진척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도 원인 제공자이자 책임당사자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제도의 운명을 가늠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적정 운임이 책정되지 않으면 화물기사들이 생존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중재하는 당사자 합의를 통해 적정 화물운송료를 책정해 적정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화물기사의 과로, 과적, 과속을 방지하며, 화물기사는 물론 시민의 생명 안전까지도 담보하는 제도다. 호주 최대의 물류거점인 시드니항이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도로안전운임제는 적정 운임은 물론 노동시간, 안전교육, 후생복지 등 도로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을 포괄하고 상설 감독기구를 설치해 관리한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화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수고용 종사자로 형식상으로 자영업자인 화물기사는 근로자의 신분도 아니고 노동조합도, 교섭권도 없다. 화주와의 합의를 성사시키려면 합리적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적용범위 확대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자동차 40만대 중 컨테이너 트레일러, 시멘트 운송 등 2만6000대에만 적용되고 있다. 유류가 인상과 생계비 압박은 화물운송 노동자 전체가 겪는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대선 구호였던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려면, 시장소득과 사회소득의 재분배 구조를 개선해 불평등에 맞서는 포용적 시장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노동정책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같은 보수라지만 최저임금 도입으로 불평등 확산에 대응했던 독일 메르켈 정부의 길을 갈지, 신자유주의 대처리즘을 추종하다 44일 만에 무대에서 사라진 영국 트러스 총리의 길을 택할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화물연대 파업과 안전운임제의 후속 처리 과정은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이 극렬 보수인지, 따뜻한 개혁보수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 검증해 줄 것이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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