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강철대오, 힘 못 받는 민노총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16호 01면

[뉴스분석] 예전 같지 않은 파업연대 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집단운송거부) 9일째인 2일 오전 업무에 복귀한 화물차들이 경찰이 배치된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집단운송거부) 9일째인 2일 오전 업무에 복귀한 화물차들이 경찰이 배치된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화물연대 파업이 9일째에 접어들면서 강철같던 투쟁의 대오가 흔들리고 있다. 법과 원칙을 앞세운 정부의 강경 대응에 여론을 오판한 노조 집행부의 무리수와 정치색 짙은 파업에 대한 일선 조합원들의 반발이 겹친 결과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예고했지만 탄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꽉 막혔던 물류가 풀리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철강 1조1000억원을 비롯해 시멘트·자동차·정유 분야에서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제품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까지 전국 주유소 60곳에서 휘발유나 경유가 동났다. 하지만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의 효과로 물동량이 회복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유와 석유, 철강은 출하에 차질이 있거나 수출 물량 중단 사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멘트 출하량과 항만 물동량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으로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12개 항만의 밤 시간대(전날 오후 5시∼이날 오전 10시)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의 81% 수준으로 올라왔다. 전날(64%)보다 17%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특히 컨테이너 반출입량 규모가 가장 큰 부산항은 거의 정상화됐다. 지난달 28일 평시의 25%까지 떨어졌던 밤 시간대 반출입량이 이날 95%로 상승했다. 김수상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비조합원뿐 아니라 조합원들도 점차 업무에 복귀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여전히 강경하지만, 일선 노동자나 비조합원들 사이에선 복귀 움직임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파업이 힘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예상치 못했던 정부의 강경 대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파업에 동조하지 않은 이들의 화물 차량에 쇠구슬을 날리거나, 공장의 출입로를 차단한 화물연대 일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부산신항에서 비조합원 화물 차량에 쇠구슬을 날린 혐의로 화물연대 조합원 3명을 체포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런 지시사항을 전하며 “필요에 따라 윤 대통령은 주말 간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파업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참모들 역시 비상대기 예정이다. 김 수석은 “물류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대체 인력과 대체 운송수단 투입 방안도 적극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교섭에서 정부는 “선 업무복귀가 없으면 교섭도 없다”며 40분만에 자리를 박찼다. 19년만에 시멘트 분야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데 이어 유조차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물류 마비를 우려해 노조 측을 달래려했던 역대 정부와는 달리 “더 세면 세졌지, 줄일 것은 없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지금 정부의 행보는 절대 강경대응이 아니라 법에 정해진 대로 법치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정부가 당연히 했어야 했던 일을 눈치보느라 안 해왔던 비정상을 정상으로 복구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나쁜데 정치 투쟁” 조합원 호응 떨어지고 여론 악화

화물연대 총파업 9일째를 맞은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 앞에서 화물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총파업 9일째를 맞은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 앞에서 화물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내부의 호응도 예상보다 못하다.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인 화물연대 조합원은 운송을 거부할 경우 그만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한 화물차 기사는 “가격이 1억5000만원을 넘나드는 트럭을 5년 할부로 사면 매달 300만원 이상을 내야한다”며 “기업체 노조는 파업이 끝나면 격려금 등으로 임금을 보전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만큼 밥줄이 끊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도 부담이다. 화물차주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 1차로 30일 이하 운행정치 처분을 내리고 그래도 불응 때는 화물운송자격이 취소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차주들이 명령서 수령을 피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못이기는 척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불법행위도 급감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거의 없다고 할만큼 확 줄었다”며 “화물차를 타고 움직이며 확성기로 욕하고 소음을 일으키는 정도인데, 이것도 경찰이 출동하면 급하게 자취를 감춘다”고 말했다.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운송거부에 참가하지 않는 차량에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지난 파업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라는 게 경찰 측의 판단이다.

민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철도노조가 잇따라 노사 협상을 타결한 것도 화물연대의 파업 대오에 균열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한국노총 산하인 통합노조(조합원 2900명)와 2030 MZ세대 중심인 올바른노조(조합원 1900명)가 민주노총 산하 공사노조(조합원 1만명)의 강경 투쟁에 제동을 걸면서 총파업 하루 만인 지난 1일 임금·단체협약에 합의하고 파업을 철회했다.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직원들이 공사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낀 결과”라고 말했다. 철도노조 역시 2일 새벽 합의안을 마련해 예고했던 파업을 철회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들의 기본적인 민심을 못 읽는 굉장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게다가 여론도 노조 편이 아니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파업 더 길게 하길, 더불어민주당 극성 지지자도 욕하기 시작함”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또 지난 1일 민주노총이 발표한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성명서를 놓고 “이게 파업 이유냐” “민주노총이 윤석열 살려준다”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35%로 지난주에 비해 3%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4%포인트 오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무리한 투쟁을 벌인 것에 시민들이 등을 돌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금리가 너무 높고, 고용 상황도 안 좋고, 가계 부채도 꼭대기, 부동산 절벽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파업도 눈치를 봐가며 해야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헌구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지금 경기가 어려운 건 국민이 다 아는데, 파업해서 어떤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수 없다”고 지적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는 이번 주말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당장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낮지만 복귀자가 늘면서 물류 마비가 점차 풀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지난 6월 하이트진로 운송거부 때처럼 사업장 단위의 산발적 운송거부로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상황은 업무개시명령이 만들어진 빌미가 된 2003년과 비슷한 흐름이다. 2002년 창립한 화물연대는 이듬해 운송 거부에 나섰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한 해 두 차례 벌어진 화물연대 운송 거부에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2차 파업인 8월에 노무현 정부는 아예 화물연대와 대화를 거부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법과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차 등록제와 함께 도입됐다. 외환위기 이후 규제 완화로 화물차가 급증하고, 운임이 낮아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화물차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신규등록을 제한하는 대신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남석 변호사는 “입법 때부터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에게 강제로 일하라고 할 수 있느냐는 위헌 소지 논란이 있었다”며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실제로 처벌한다기보다 정부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운송 거부의 빌미가 된 안전운임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했다. 그 효과에 대해 정부와 화물연대의 시각이 갈린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과 2021년을 비교한 결과 시멘트 차주의 과적 경험이 30%에서 10%로 줄고,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 29%에서 1.4%로 감소했다. 월 소득은 201만원에서 424만원은 100% 이상 늘었지만, 월 근로시간은 375.8시간에서 333.2시간(-11.3%)으로 줄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가 ‘안전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같은 기간 화물차 사고는 690건에서 745건(8%)으로, 사망자 수는  21명에서 30명(42.9%)으로 되레 늘었다는 것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년은 안전운임제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려운 기간”이라며 “정부와 노조가 일단 3년 연장에 합의했으니 화물차주 쪽에서 선임한 전문가와 국토교통부·사업체를 중심으로 3자가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한 뒤 그때 논의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