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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다리 절단할 뻔…이태원 그날 밤 軍병원 전화 울렸다

중앙일보

입력

김남렬 국군외상센터장

김남렬 국군외상센터장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외상센터 내 응급소생실에서 외상 응급 환자 치료 절차 등을 설명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김남렬 국군외상센터장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외상센터 내 응급소생실에서 외상 응급 환자 치료 절차 등을 설명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158명의 소중한 인명이 희생된 운명의 그날 밤, 단 한 명의 젊은 목숨이라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의료인들이 적잖았다. 평소 군인 환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군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0월 30일 0시25분쯤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당직 전화기가 울렸다. ‘이태원 참사’로 심하게 다친 응급 외상환자를 치료해줄 수 있느냐는 현장 구급대원의 다급한 전화였다. 의료진은 즉각 후송하라고 답한 뒤 준비에 착수했고, 조금 뒤 센터로 후송된 부상자 세 명은 곧바로 응급치료를 받으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상자 한 명은 압사에 따른 괴사 현상이 심해 조금만 늦었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덕에 3주 뒤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통상 군 병원은 부상당한 군인만 치료하는 곳인 만큼 민간인 환자의 이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군외상센터만은 예외다. 지난 4월 개소하면서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응급 환자 치료에도 적극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남렬 초대 국군외상센터장은 “교통사고 등으로 치명적 부상을 입은 외상 환자는 무엇보다 시간과의 싸움이 최대 관건”이라며 “민간 분야의 외상 응급치료 인프라가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군이 치료에 동참하는 게 공공의료기관의 당연한 책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 등에서 20년 넘게 외상 치료 외길을 걸어온 김 센터장을 중앙SUNDAY가 만나 국내 외상 의료 체계의 현실과 개선 방안 등을 들어봤다.

어떤 계기로 민간인 치료에 나서게 됐나.
“사실 10년 전 국군외상센터 설립을 준비할 때부터 민간인도 적극 치료하는 걸 염두에 뒀다. 외상 응급 환자의 경우 군인보다 민간인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당시 ‘아덴만 여명작전’ 때 석해균 선장의 극적인 생환으로 외상 응급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군도 자연스레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자칫 군 환자 치료가 소홀해지진 않을까.
“군을 위한 의료기관인 만큼 군 환자용 의료 자원은 당연히 확보해 두고 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군 외상 환자를 위해 전체 중환자실 중 절반은 항상 비워두고 있다. 다만 군 외상 환자를 모두 수용하고도 여력이 있으니 민간인 응급 환자 치료도 최대한 돕겠다는 취지다. 일반 환자와 달리 외상 응급 환자는 사고 지역부터 병원까지 얼마나 빨리 이송되는지가 가장 관건이다. 이처럼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군 병원과 민간 병원이 따로일 수 없다.”
국군외상센터 의료진이 응급 외상 환자를 헬기로 후송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군외상센터 의료진이 응급 외상 환자를 헬기로 후송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센터장은 그러면서 “무엇보다 군 의무팀은 야전 후송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전용 헬기도 8대나 확보하고 있어 소방 헬기와 달리 기상이 안 좋은 상황에도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환자가 발생할 경우 인근 부대에서 곧바로 헬기가 출동해 10분 내에 후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또 전체 의료진 중 절반은 민간 병원 외상외과 출신 의사들로 충원했다. 외상 환자 치료 경험이 풍부할수록 민간인 환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덴만 작전 이후 이국종 교수와 외상 치료팀이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 응급 외상 치료 시스템도 사회적 관심 속에 조금씩 개선돼 왔다. 권역외상센터도 전국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17곳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김 센터장의 진단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상센터의 역할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할 때라는 점에서다.

권역외상센터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 만큼 의료기관과 관계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향후 운용 및 개선 방향에 대해 냉철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지금은 권역외상센터가 17개 시·도별로 배치돼 있다 보니 수도권 등 환자가 몰리는 지역에선 여전히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떠돌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가 적잖다. 외상센터 체계를 좀 더 세분화해 수요에 맞게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비외상 응급 환자도 외상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자는 주장도 있는데.
“지난 8월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대표적 사례 아니겠나. 치명적 부상을 입은 환자만 응급 환자가 아니다. 뇌·심장 질환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매우 많다. 하지만 규정상 물리적 외상 환자가 아닌 경우 수술과 입원 치료가 불가능하다. 응급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란 점에서 권역외상센터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외상 의료 체계가 한 단계 나아가려면.
“지금까진 최대한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해 수술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피가 멈췄다고 끝이 아니다. 응급치료 못지않게 재활과 트라우마 치료 등 사후 조치가 꾸준히 병행돼야 온전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해 국내 외상 의료기관들도 응급처치 이후 단계에 관심을 갖고 관련 인력과 시설을 충원해 나갈 때 응급 외상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평가도 함께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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