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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고급휘발유 넣었다" 배달업자들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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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박해리 기자

서울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박해리 기자

2일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 내부 곳곳에 ‘휘발유 품절’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이곳은 전날 영업 시작부터 휘발유가 바닥나 이틀째 휘발유를 팔지 못하고 있다. 안내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한 차들이 주유하러 들어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싼 고급휘발유를 대신 넣었다.

주유소에 머물던 15분 동안 총 3대의 차량과 오토바이 2대가 들어왔다. 오토바이 1대는 고급휘발유를, 소형트럭 1대는 경유를 넣었다. 나머지 3대는 아무 기름도 넣지 못했다. 이 주유소 관계자는 “시내에 위치해서 손님이 많은 편이라 휘발유가 일찍 동이나 전날 영업 시작 시간부터 못 팔았다”라며 “고급휘발유도 얼마 남지 않아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 중으로 다 판매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전국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운송거부가 9일째 이어지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주유소 곳곳이 영업을 멈추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오전 8시까지 서울·경기·인천 32곳, 비수도권 20곳의 주유소에 휘발유나 경유가 품절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33곳)보다 19곳 늘었다. 연료별로는 휘발유 35개소, 경유 11개소였고 휘발유와 경유가 모두 동난 곳은 6개소였다.

기름을 실어나르는 유조차(탱크로리) 운전자들 상당수가 화물연대 조합원으로 가입돼 파업에 참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고 확보가 쉽지 않아 품절 주유소가 속출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본사에 긴급 물량을 요청했지만 당장 수급이 쉽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로 며칠을 보내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휘발유가 품절된 곳에는 비상대응 차량을 섭외해서 긴급하게 물량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순차적으로 보내고 있기 때문에 지점별로 품절상황이 길어지는 곳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름이 필요한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배달업을 하는 A(48)씨는 “우리처럼 바퀴 굴리며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기름이 끊기는 건 치명적”이라며 “시간도 돈인데 기름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주유해야 하니 이 또한 손해”라고 말했다. A씨는 이날 품절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돌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시멘트에 이어 탱크로리 운송 기사를 향해서도 정부의 추가 업무개시명령이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이상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유소의 재고 문제도 운송거부 사태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정유, 철강, 컨테이너 등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는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피해가 크게 확산하면 업무개시명령을 즉시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 유가 중국 경제지표 둔화와 오펙의 추가 감산 가능성 저하로 인해 유가는 하락 중이다. 유가정보 플랫폼 오피넷에 따르면 11월 5주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주대비 18.3원 내린 1626.2원으로 12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한동안 상승하던 경유 가격도 전주대비 1.64원 내린 1862원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는 하락 중이지만 공급난이 장기화하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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