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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시절 방치, 野되고 강행? 방송법·특별감찰관 태도 바뀐 민주

중앙일보

입력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69석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시절엔 추진하지 않았던 법안들을 줄줄이 강행 처리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국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사장 추천에 친야(親野) 성향 인사들이 관여할 수 있는 방송 관련법 개정안이 여야 갈등의 새 뇌관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이 법안 강행 처리에 착수하자, 국민의힘은 “여당일 때는 움직이지 않다가 야당이 되더니 돌변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맹비난했다.

국회 과학방송기술통신위원회 소속이자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장인 고민정 의원은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12월 1일 열리는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라며 “여당이 법안 개정에 소극적이다. 합의가 안 되면 단독 처리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29일 과방위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위원장 조승래 민주당 의원)에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등을 단독처리했다. 소위 위원 9명 중 국민의힘 의원 4명이 반대하며 퇴장하자 민주당 의원 5명이 일방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결과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맨 오른쪽) 등 민주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11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영방송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맨 오른쪽) 등 민주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11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영방송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법안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를 9~11명에서 21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사진은 국회(5명),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방송기자·PD·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각 2명씩 6명) 등이 추천하도록 했다. 별도의 사장후보추천위가 복수의 사장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재적인원 3분의 2(14명) 이상 찬성으로 사장 1명을 선임하는 구조다.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친(親)민주당이자 친(親)민주노총인 언론노조의 추천인사가 이사진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다. 공영방송이 노영(노조경영) 방송이 될 것이 불보 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방송·미디어학회나 직능단체에 언론노조 등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친야 성향의 사장이 뽑힐 거란 논리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이재명 대표(오른쪽)와 국회 과방위원장인 정청래 최고위원이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이재명 대표(오른쪽)와 국회 과방위원장인 정청래 최고위원이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번 소위 처리안에는 민주당이 지난 4월 민주당 의원 171명 전원 명의로 발의한 원안에서 빠진 부분도 있다. 이사진 추천 기관에 포함돼 있던 ‘광역단체장협의회(4명 추천)’를 단독 처리 과정에서 삭제한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 추천 몫이 있으니 전체적인 정치권 추천 몫을 줄인 것”(초선 과방위원)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민의힘은 “지난 6월 지방선거 완패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까 봐 뺀 것 아니겠냐”(영남 초선)고 반박했다.

게다가 방송 관련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야당이던 2016년 7월 범(汎)야권과 손잡고 162명(더불어민주당 116명, 국민의당 37명, 정의당 6명, 무소속 3명) 명의로 발의하며 당론으로 추진했다가, 2017년 대선 승리 후 180도 입장을 바꾼 사안이다. 2017년 8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지적한 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5년 내내 방치했다.

지난 10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정기국회 막바지에 갑자기 방송 관련법 개정안 카드를 들고나온 것에 대해 민주당 과방위원은 “언제까지 정치권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미치게 할 순 없지 않으냐”며 “21대 전반기 국회에서는 해당 소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고 있어 상정하지 못했지만, 후반기에는 야당 의원이 소위원장이어서 이참에 속도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여당 시절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방송 관련법 개정안 처리를 미뤄놓고 야당이 되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며 “국민들도 거대 야당의 ‘입법횡포’라고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과방위에서 방송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법제사법위원회서 최대한 막아서겠다는 방침이다.

産銀 부산 이전 추진했던 민주…정권 바뀌자 “재검토해야”

야당이 된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사안은 또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했던 산업은행 본점(여의도 소재)의 부산 이전도 최근 막아섰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29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행사를 주최한 박성준 의원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려면 충분한 의견수렴과 타당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산업은행 이전은 조직 내부 갈등만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김영호 의원)도 지난 10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익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퇴임 직후 KTX울산 통도사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퇴임 직후 KTX울산 통도사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결과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산업은행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취임 후에도 이를 추진하자, 민주당이 방침을 바꿔 제동을 건 셈이다. 산업은행 본점을 이전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법 4조의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처리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9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직접 불을 붙였던 ‘산업은행 이전’을 4년여 만에 거둬들이는 데 대해 당내에서도 실망감이 적지 않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지방 민심 달래기가 급하다 보니 내놓았던 공약인데, 지금은 수도권 민심에 빨간불이 켜지다 보니 입장을 슬며시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설파했다. 오종택 기자

2018년 9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설파했다. 오종택 기자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임명하지 않았던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임명도 요구하고 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과 수석비서관 이상의 비위를 상시 감찰하는 기구다. 민주당의 계획은 특별감찰관을 통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것이지만, 국민의힘에서는 “도 넘은 정치공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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