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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세 노병 거수경례…"영광이다" 손 꼭잡은 룩셈부르크 대공세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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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대뜸 거수경례부터 했다. 경례를 받은 이는 노병과 반갑게 악수했다.

기욤 장 조세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29일 오후 3시 서울 전쟁기념관 6ㆍ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비에서 룩셈부르크 소대 참전 유공자 김성수(97) 옹과 함께 참배했다..

한국을 방문 중인 기욤 장 조세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추모비에 헌화와 참배를 마친 뒤 6ㆍ25 전쟁 룩셈부르크 참전유공자 김성수 옹,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

한국을 방문 중인 기욤 장 조세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추모비에 헌화와 참배를 마친 뒤 6ㆍ25 전쟁 룩셈부르크 참전유공자 김성수 옹,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

김 옹은 룩셈부르크 소대 표식이 달린 갈색 베레모를 기욤 대공세자에게 보여주면서 “A 컴퍼니(중대) 룩셈부르크 플러툰(소대)”라고 말했다. 기욤 대공세자는 김 옹의 나이를 듣고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만나서 영광이다. 복무에 감사한다”고 말한 뒤 걷는 게 불편한 김 옹의 손을 잡고 함께 다녔다.

기욤 대공세자는 한ㆍ룩셈부르크 수교 60주년을 맞아 프란츠 파이요 경제부 장관 등 경제사절단 70여명과 함께 27일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번이 네 번 째 방한이다.

룩셈부르크는 서유럽의 소국이다. 넓이는 서울의 4배 정도(2586㎞) 정도며, 인구는 64만 명 수준이다. 국가의 수장은 대공(Grand Duke)이다. 지난해 국민소득(1인당 GDP 기준)이 13만 1302 달러(2021년 IMF)로 전 세계서 가장 높다.

6ㆍ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 당시만 하더라도 룩셈부르크는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 그런데도 한국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성춘 군사편찬연구소 소장은 “룩셈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에 점령돼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49년 영세 중립국을 포기하고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며 “이후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데 가장 열심”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국방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금액(7000만 유로)을 원조한 나라가 룩셈부르크다.

룩셈부르크는 50년 10월 1일 지원병 48명으로 1개 소대를 편성했다. 룩셈부르크 소대는 옆 나라인 벨기에군 대대 소속으로 51년 1월 31일 부산에 상륙한 뒤 학당리 전투와 잣골(철원)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룩셈부르크 소대로 연인원 100명이 참전했으며, 이 중 2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했다. 현재 6명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다.

6ㆍ25 당시 룩셈부르크 인구 20만명이 조금 넘었으니, 연인원 100명이라면 22개 참전국 중 전체인구 대비 참전병력이 가장 많다.

김 옹은 중학생이던 16세 때인 51년 학도병에 지원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소대에서 관측병으로 53년까지 싸웠다. 그는 “룩셈부르크 소대는 수는 적지만, 대공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아주 용맹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6ㆍ25는 룩셈부르크가 해외에 파병한 유일한 사례”라며 “룩셈부르크 참전용사의 공헌 덕분에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와 함께 6ㆍ25에 파병한 벨기에의 필리프 국왕은 2019년 3월 한국을 찾아 벨기에 대대 참전유공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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