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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환자도 의사도 디아스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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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정치적 의도는 딱히 없다. 그럼에도 수년에 걸친 논쟁을 꺼내든 것은 ‘불편한 정의’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진행된 이른바 ‘문재인 케어’는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로 한 의료정책이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를 어느 누가 탓하겠는가. 그러나 정부의 선한 의지와 달리 근원적 의문은 애초부터 가시질 않았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 부담일 터인데 보장률을 높여 의료비를 경감하겠다는 발상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으로 보장률은 부담률을 수반할 터이니 말이다.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이후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급격하게 악화하였다. 건보 적용 범위 확대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건보 수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원 이용이 현격히 줄었던 지난 2년을 제외하고는 2018년 이후 내리 적자였다. 그 폭도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건강보험 곳간이 거덜 나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비 걱정 없다던 문재인 케어
건보재정 거덜 낸 ‘불편한 정의’
동네병원 썰렁, 대형병원 북적
의료전달체계 전환점 마련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환자 부담이 줄면 의료 소비량은 당연히 늘어나기 마련이다. 동네 의원과 비용 차이가 크지 않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도 확장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했다. 고향을 찾아 지역에서 개원한 후배들은 중증 환자는 물론이려니와 가벼운 시술 환자까지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이동이 확산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이러다간 지역 의료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2028년까지 수도권 신규 분원 계획을 발표한 대형병원은 날로 늘어간다.

보장성 강화에 따른 민영보험 반사 이익을 실손보험료 인하로 연결해 보험료 부담도 낮춘다는 당초 계획도 좌초되었다. ‘문재인 케어’ 시행 후 4년간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건강보험료 인상률의 3.5배 이르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민의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가고 있었다. 대략난감이다.

작금의 상황은 ‘문재인 케어’가 추구한 의료정책의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듯 정책은 선해도 결과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최저임금도 그랬고 주 52시간도 그랬다. 경험치가 부재한 채 확신에 찬 어조로 정책을 주창했지만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의 이면에는 이렇듯 늘 축축한 습기가 있다. 고스란히 국민이 누울 자리이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핵심적 역할인 의료 서비스는 선언적인 정치 논리에 포획 당하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국민 누구나가 최상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나 의료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권리로서 작동돼서는 안 된다. 의료 서비스의 현장에 동네 의원이 있다. 지역 병원이 있다.

의사였던 아치볼드 A J 크로닌의 소설 『성채』는 군의관들이 전쟁터에서 배낭에 넣고 다녔던 성경 같은 작품이다. 『성채』를 한 번쯤 읽지 않은 의대생이 있을까 싶다. 소설 속 영국의 의료체계는 열악하다. 저임금 근로자는 보험에 가입되었으나 가족에겐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아픈 자녀를 두고도 의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개원 의사는 환자 1인당 연간 인두세를 받았지만, 의사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환자보다 비용을 지급하는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인다는 비난이 폭주했다. 관료의 탁상에서 비롯된 의료전달체계는 인술을 지향하던 크로닌에게 성채처럼 견고한 획일성의 요새였을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불의, 감추어진 비과학적 고집, 속임수에 대해 내가 느낀 모든 것을 썼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이야기 속엔 공포와 불평등이 세밀하게 적혀있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다.” 이 소설은 1945년 영국 총선과 1948년 노동당 정부의 의료정책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린 의료정책의 결과에 대해 너무도 관대하다.

그리스어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이다. 의사로서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존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사이 한국 의료체계의 오류가 있다. 근거 중심의 학문에 익숙한 의사들은 가뭇한 정의에 기대어 선 ‘문재인 케어’의 과학적 통계의 암울한 현실 앞에 의료체계 전달의 전환을 소망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환자들의 신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생존을 유지할 길을 찾는 디아스포라 일 수밖에 없다. 집을 떠나 서울의 큰 병원으로 떠나는 환자도 디아스포라의 길을 걷고 있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