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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금 은행원도 추적 가능? 의원 집서 발견된 '돈다발 띠지'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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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택에서 발견된 현금 3억원 중 일부가 띠지로 묶여 있다고 알려지며 띠지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무더기로 발견된 5만원권의 일부가 띠지에 묶여 있었는데, 검찰이 띠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히면서다. 돈을 묶는 끈인 띠지가 수사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5만원권 100장이 띠지로 묶여 있다. 대개 시중은행에서는 해당 은행 로고를 찍은 띠지를 사용한다. 최현주 기자

5만원권 100장이 띠지로 묶여 있다. 대개 시중은행에서는 해당 은행 로고를 찍은 띠지를 사용한다. 최현주 기자

요즘은 카드나 페이 결제가 일반화하며 현금 거래가 거의 사라졌지만, 이전엔 현금 뭉치를 주고받아야 할 일이 가끔 있었다. 이럴 때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큰 액수의 현금을 인출하면 100장씩 묶인 돈다발을 내줬다. 한 다발에 1만원권 100장, 5만원권 100장이 묶여 있는 식이다. 이 돈 다발을 묶은 하얀 끈 같은 종이가 띠지다.

띠지는 한지로 만든다. 종이인 지폐 100장을 단단히 묶어야 하므로 잘 찢어지지 않으면서도 묶기는 편해야 한다. 인쇄업계 전문가들은 한지가 질기면서 잘 꼬이는 특성이 있어 띠지로 적당하다고 설명한다.

돈을 묶는 띠지에 정해진 규격은 없다. 시중은행에서는 대개 가로 25㎝, 세로 1.5㎝ 크기의 흰색 띠지를 사용한다. 인쇄업체에 띠지를 주문하면서 로고 디자인을 함께 의뢰해 고유 은행명이 적힌 띠지를 사용한다. 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은행 로고가 박힌 띠지로 같은 액수의 돈을 100장씩 묶는데 이때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고유 문양의 작은 도장을 띠지에 찍는다.

도장 문양은 대개 이름 중 한 글자를 한자로 쓰는 식인데 다양한 글자체를 활용한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는 해당 돈다발의 액수를 내가 셌고 액수도 확인했다는 의미”라며 “띠지 색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일단 도장 식별이 돼야 하므로 흰색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1만원권 100장씩 묶인 돈다발 띠지에 해당 돈다발을 묶은 은행 직원 고유 도장이 찍혀 있다. SBS 캡처

1만원권 100장씩 묶인 돈다발 띠지에 해당 돈다발을 묶은 은행 직원 고유 도장이 찍혀 있다. SBS 캡처

만약 수사 대상인 돈다발에 띠지가 묶여 있다면 일단 해당 자금을 출금한 은행을 로고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 은행 전 직원의 도장과 해당 돈다발 띠지에 찍힌 도장을 비교하면 이론적으로 어느 지점, 어느 창구에서 해당 자금이 인출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것만 알아도 자금 출금 시점이나 인물에 대한 수사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은행 전 직원의 도장 모양이 전산화돼 있지 않아 실제 이 방식으로 수사하려면 수만개의 도장 모양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므로 쉽지 않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출금한 은행 영업점 위치를 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당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도장 모양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중 은행에서 사용하는 띠지에 정해진 규격은 없지만, 한국은행과 거래할 때 사용하는 따지는 일반 띠지보다 세로 폭이 두 배 정도 넓은 제품을 사용한다. 시중 은행에서 한국은행에 입금할 때는 띠지에 은행은 물론 영업점과 돈을 세서 묶은 직원 이름까지 쓰고 해당 직원이 도장도 찍어야 한다. 이 때문에 면적이 넓은 띠지를 사용한다.

카지노나 도박장, 성매매 업소 등에서는 혹시 모를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은행 로고가 찍힌 띠지를 제거하고 고무줄 등으로 현금을 100장씩 묶기도 한다. 경찰이 성매매업소 운영자들에게 압수한 돈다발. 중앙포토

카지노나 도박장, 성매매 업소 등에서는 혹시 모를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은행 로고가 찍힌 띠지를 제거하고 고무줄 등으로 현금을 100장씩 묶기도 한다. 경찰이 성매매업소 운영자들에게 압수한 돈다발. 중앙포토

해당 은행 띠지로 묶어놨던 돈다발을 한국은행에 입금할 때는 기존 띠지를 전부 풀고 한국은행용 띠지로 다시 묶어야 한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출금했을 때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업점과 직원 이름 등이 적혀 있는 한국은행용 띠지를 풀고 해당 은행 로고만 박힌 일반 띠지로 다시 묶어서 직원의 도장만 찍는다.

일반적으로 카지노나 도박장, 성매매업소 등 검찰이나 경찰 등의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작지 않은 곳에서는 혹시나 모를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은행 로고가 있는 띠지를 풀고 분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모를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띠지는 일반인도 쉽게 살 수 있고 원하는 로고나 모양을 넣을 수도 있다.

한편 5만원권의 환수율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5만원권 환수율은 17.4%로, 5만원권을 5장 찍어내면 1장도 회수되지 않았다. 5만원권을 처음 발행한 2009년을 제외하고 역대 최저치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8년 67.4%에서 2019년 60.1%에서 2020년 24.2%로 급락했다.

이같은 '5만원권 실종 사태'는 경제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보관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고액권을 선호하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또한 2011년 '김제 마늘밭 110억원' 사건처럼 불법 자금 등을 감추는 데도 5만원권이 주로 쓰이는 것도 환수율을 떨어뜨리는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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