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흑흑 창고 끌려왔어" 딸 전화에 은행 달려간 아빠,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흑흑…. 아빠… 큰일 났어…."

"무슨 일이야? 사고라도 났어?"

"친구가…. 사채 돈을 빌렸는데…. 흑흑…. 내가 보증을 서줬어…. 나 지금 지하 창고 같은데 끌려왔어…. 나보고 돈 내달래…."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 박 모(66) 씨는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놀란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전화기로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남성은 박씨에게 “사채업자 이상철입니다. 아버님이 돈을 대신 갚으시면 따님 머리털 한 끗 안 다치고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근데, 제가 오늘 돈을 못 보면 따님 몸속에 있는 콩팥 하나 떼서 돈으로 바꿀 겁니다”라고 하면서 3400만 원을 요구했다.

박씨는 딸을 안전하게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돈을 드릴 테니 우리 딸은 내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는 송금을 하기 위해 자신이 일하는 강원 홍천군 한 편의점에 보관한 통장을 허겁지겁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박씨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했고,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홍천경찰서 희망지구대 소속 경찰들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의심된다며 현금 인출을 저지했다.

그러나 딸의 신변이 걱정됐던 박씨는 경찰의 만류를 뿌리치고 은행으로 달려가 직원에게 3400만원을 출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박씨를 뒤따라온 경찰들이 지구대 휴대용 정보 단말기(PDA)로 딸과 전화 연결을 시켜줬고 박씨는 딸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전화를 받자마자 울면서 말하니 딸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됐다”며 “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니 처음에는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큰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떨렸다"며 "만약 이런 비슷한 일을 겪으신다면 우선 전화를 끊고 직접 상대에게 전화해서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하시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최근 변작 중계기를 이용해 피해자가 저장해 놓은 가족의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뜨도록 조작하는 수법으로 범행하는 경우가 잦다"며 "이럴 경우 실제 가족·지인 본인이 맞는지 직접 전화해 확인하거나, 의심이 드는 경우 다른 전화기를 이용해 112에 신고하는 등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