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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최고회의 대의원 20%나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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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는 18일은 북한이「여성의 사회참여」「여성해방」등을 내세우고 결성한「조선민주여성동맹」창립 45주년.
통계 숫자 면으로 본다면 북한은 여성의 사회진출 면에서 남한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지난9월5일 서울에서 열린 제l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을 위한 만찬장에서 연형묵 북한총리는『북조선에서는 여성이 역사의 두 수레바퀴 중 한쪽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고 소개한바 있다.
최근의 북한자료에 따르면「여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된 조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제62조) 정신에 따라 북한에서는 여성이 전 노동자의 49%를 차지하고있다.
최고인민회의의 제9기대의원(국회의원) 6백87명중 여성이 l백36명으로 20·1%를 차지하고, 여성과학자와 기술자가 46만5천명으로 그중 박사 등의 학위를 지닌 여성이 4천명에 이른다는 점등은 북한의 우먼파워를 나타내는 예들이다.
그러나 북한연구전문가들은『북한의 이 같은 남녀평등정책은 여성해방을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 대부분의 공통점이나 노동력 창출의 수단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우먼파워를 대표하는 인물로는「영부인」역할을 벗어나 정치 일선에서 거센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김일성의 처 김성애를 비롯해 정무원 부총리 김복신,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 여운형의 딸 여연구, 북한최고의 인민배우 문예봉, 허담의 부인 김정숙, 정무원 재정부장 윤기정 등을 들 수 있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북한의 여류들을 소개해본다.
▲김성애(66·본명 김성팔)=김일성의 후처로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민주여성동맹(여맹)위원장이자 최고인민회의 위원 및 상설회의(15인)위원을 겸하고 있다.
황해남도 해주 출생으로 김일성과의 사이에 4남. 장남 평일은 현재 불가리아 대사를 맡고 있다. 48년까지 민족보위성 안전부부부장 김성국의 타자수로 일했다.
빼어난 미모에 애교가 많은 처녀였다.
김일성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김일성이 김성국의 사무실을 불시 방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에서 타자를 치던 김성애를 발견하고 한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이 돌아간 다음날 그의 부관이 김성국에게 전화를 걸어『수상동지가 타자수를 구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성국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즉시 김성애를 김일성의 비서로 올려보낸 것이 김일성 가족이 됐다.
김일성은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49년 사망하자 독신생활을 하다 최용건·김일 등 당 중진들의 추천으로 그녀와 결혼했다.
65년 여맹 부위원장을 거쳐70년 5차 당 대회에서 노동당중앙위원까지 지위가 격상됐다.
71년0월 여맹 위원장에 기용됐으며 75년5월 김일성을 따라 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아·불가리아·유고 등을 순방하기도 했다.
시동생인 김영주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나 전실소생인 김정일이 73년9월 후계자로 부상하면서부터 위상에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
김정일은 73년6월 김성애가 책임을 물어 해고시킨 군 당 책임비서를 복직시키는가하면 74년 기념식자리에 김성애의 좌석을 배치하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푸대접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김정숙의 우상화에 한때 비협조적이었으나 75년1l일 여맹창립 30돌 기념행사에서 김정숙을「불굴의 공산주의투사」라고 찬양하는 등 김정일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애써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복신(64)=북한의 여성노동자 출신가운데 성공한 대표적 인물.
평남 신의주출신으로 6·25때 남편을 잃은 뒤 피복공장의 노동자로 출발해 노동당정치국후보위원, 정무원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여성이다.
50년 중앙당학교를 수료한 것 외에는 특기할만한 학력이 없는 그녀는 밑바닥 인생에서 배운 출세술과 방직공장의 지배인 경력, 해외시찰을 통한기술지식의 축적으로 60년 대 북한사회의「헐벗고 굶주림」을 극복하는데 앞장선 여성지도자로 평가되고있다.
▲정경희(59)=60년대 초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서울과 동경에서 공작활동을 한 이력의 여성.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여중을 중퇴하고 인천전신전화국 교환원 때 남로당에 가입했다.
49년 남로당의 지시로 인천전신전화국에 폭발물을 장치해 폭파하는 등의 활동을 한 후 체포되어 마포형무소에 투옥돼 있다가 6·25때 탈옥, 월북했다.
52년 노동학원·금강정치학원을 거쳐 75년 중앙당학교를 수료한 후 56년 함남도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이 되었고 61년 함남도당 선전선동부 부 부장으로 피선됐었다.
대남 공작활동의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신임을 얻어 노동당중앙위원·부장을 거쳐 75년 대남 공작활동을 전담하는 노동당 연락부장에 기용됐었다.
80년 노동당중앙위원·정치국 후보위원까지 격상되었으나 80년대 중반 정치국 후보위원자리를 물러났다.
여자로서는 드물게 정확한 분석력과 판단력, 두둑한 배짱을 겸비한「여장부」로 불리고 있다.
▲김경희(44)=김정일의 여동생으로 노동당중앙위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북한에서「떠오르는 별」로 주목받는 장성택(당 부장)의 부인이다.
여맹의 핵심간부를 자신의 측근으로 포진시키는 등 여맹의 실질적인 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다.
남산고등중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 정경학부를 졸업, 모스크바대학 러시아문학부 3년을 중퇴했다.
75년 노동당중앙위 국세부지도원을 시작으로 84년 8월부터 당 국제부 부 부장을 맡아 국제문제의 숨은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여연구(63)=여운형의 맏딸. 조국전선의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부의장을 맡고있다.
지난8월「세계 범민족대회」의 북한측 준비단장으로 85년9월 남북고향방문단 교환 당시 서울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화여대 재학 중 47년 3남매가 월북, 소련 모스크바대에 유학했으며 전쟁 후 외국어교육기관에서 교편을 잡았다.
70년대 말 대남 통일전선 조직인 조국전선의 서기국장에 기용되어 활동하다 83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남성적인 성격에 활달하고 개방적이며 최은희·신상옥씨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대부분의 재미인사들은 그녀의 영접을 받았다.
▲윤기정(62)=10여 년 동안 정무원 재정부장을 맡고 있는 북한의「여성 재무통」노동당중앙위 후보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 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기복(64)의 누이동생이란 설도 있다. 80년 재정부장을 맡기 전 경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강점숙(55)=여맹부위원장 겸 서기장을 맡고 있는 북한의「여성엘리트」.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여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줄곧 여맹에서 뼈가 굵은「여성통」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맹 대표단원 및 단장자격으로 일본·자이르·이라크·불가리아·소련·헝가리·동독 등을 방문했다.
▲문예봉(73)=월북 배우. 해방 전『임자 없는 나룻배』『춘향전』『나그네』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48년 봄 월북했다.
84년 남북고향방문 행사당시 서울에 왔었다.
49년 북한 최초 극영화 『내 고향』등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 82년에 북한이 자랑하는 인민배우 칭호를 얻었으나 한때 복고주의·종파주의자로 몰려 숙청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슬하에 4남매와 13명의 손자·손녀를 두고 있다.
큰아들이 음악가, 큰딸은 기자, 둘째 딸 내외는 과학자, 그리고 맏손녀는 유망한 예술체조(리듬체조)선수인 것으로 북한의 선전책자는 소개하고있다.
이밖에 북한의「여성엘리트」들은 ▲황순희(노동당중앙위원·혁명박물관장·최고 인민회의 대위원) ▲김정임(노동당 당 역사연구소 부소장) ▲허창숙(전 김일 부주석의 부인·여맹 부위원장·노동당중앙위후보위원) ▲김숙정(경공업 대학장) ▲김종옥(적십자병원안과박사) ▲박복순(전 평양사범대학장) ▲백설희(노동당중앙위후보위원·과학원식물학 연구소실장) ▲강순희(정무원경공업위원회부위원장·노동당중앙위부위원장)▲이수월(노동당중앙위후보위원·중앙선거위원) ▲유금보(전 정무원보통교육부장) ▲신정희(사노청 중앙위 부위원장)등이 있다. <김국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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