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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읽는 게 아니라 겪는 것, 이론보다 경험이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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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신간 『인생의 역사』를 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내 평론이) 유일무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 고유한 것이면 좋겠다”며 “책에서 기대하는 건 ‘내 고민, 내 질문과 스파크가 생기는 딱 한 문장’인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한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최근 신간 『인생의 역사』를 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내 평론이) 유일무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 고유한 것이면 좋겠다”며 “책에서 기대하는 건 ‘내 고민, 내 질문과 스파크가 생기는 딱 한 문장’인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한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책 표지 아래쪽에 대뜸 이런 문구가 인쇄돼 있다. 시 아닌 것은 육성(肉聲)이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저자 인터뷰를 위해 접촉했더니 e메일 사용자 이름이 ‘poetica’. 라틴어로 시(poetry)라는 뜻이다. 이쯤 되면 시쳇말로 시에 진심인 게다. 시 이야기쯤을 뜻하는, ‘시화(詩話)’라고 장르명을 지어 붙인 산문집 『인생의 역사』(난다)를 최근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46)씨 얘기다. 지난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신씨를 만났다. 그는 8년 넘게 근무했던 조선대 문예창작학과를 떠나 지난 9월 서울대 영문과로 자리를 옮겼다. 비교문학 협동 과정에서 20여명의 대학원생을 가르치느라 학교가 있는 서울과 집이 있는 광주를 오간다.

『인생의 역사』

『인생의 역사』

신씨는 요즘 보기 드문, 책 팔리는 평론가로 꼽힌다.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2008년), 영화 산문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년),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2018년), 이런 전작들을 통해 꾸준히 팬덤을 넓혀 왔다. 이번 시화집도 예약판매 등으로 출간 직후 한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9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로소 시로 돌아와 집중한 이번 책에서 신씨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썼다. 인터뷰에서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던 시가, 어떤 경험 이후 어느 날 문득 너무나 쉽게 이해되거나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는 읽는 게 아니라 겪는 것”이라며 “시는 비밀을 품고 있는 압축된 문학이고, 그 비밀을 각자 다르게 읽어내며 (시의 비밀을)‘들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는 질문이라고도 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 대한 글에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87쪽)진다는 구절이 있다. 신씨는 “질문에 답이 있어야만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만, 질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달라진다”며 질문의 중요성, 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생과 결부시킨 시 읽기는 책 목차에서도 드러난다. 고통·사랑·죽음·역사·인생 등 5개 주제로 나눠 주제당 5편씩 시를 추리고 그에 관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다. ‘공무도하가’부터 밥 딜런과 가수 윤상, 시인 이영광·박준 등의 시를 다뤘다.

그는 올해 인생에 꼽을 큰 변화를 겪었다고 했다. 지난 1월 아들 ‘신기룬’이 태어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에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나는 정신을 차리고/길을 걷는다/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다룬 글의 제목을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라고 붙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라고 썼다.

신씨는 고통-사랑-죽음-역사-인생으로 이어지는 책 목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위치라고 했다. “고통 뒤에는 사랑이 필요하고, 그 사랑도 죽음으로 깨지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결정하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쓴 글들이지만, 최근 이태원 참사와 겹쳐 읽히는 대목도 있다. 영국 시인 W H 오든의 ‘장례식 블루스’에 대한 글이 그렇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애도하는 법을 잘 모르고 있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고 썼다. 인터뷰에서는 “155명의 죽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55번 일어난 것이고, 그와 연결된 관계까지도 세어야 한다”며 “애도는 ‘최대의 애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하는데 지금은 ‘최소 애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도행정’이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공감에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있다고 했다. “정서적 공감은 인지적 공감의 양에 비례한다. 인지적 공감(이해)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갈 기회가 없으니 대신 문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유일해지고 싶다”는 그는 “책에서 기대하는 건 보통 ‘내 고민, 내 질문과 스파크가 생기는 딱 한 문장’인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한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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