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 흉악범죄 피해자의 호소/범죄 퇴치에 모든 국민 나설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낮에 네 식구를 잃은 이 억울함이 어찌 우리 가족만의 일이겠습니까. 서연이는 흉악한 범죄 앞에 방치된 우리 국민 전체를 대표한 순교자일 뿐입니다.』 망나니 3인조에 의해 다섯 살 난 귀염둥이 딸을 생매장당한 최영규씨의 절규는 치안부재가 위험수위에 이른 우리 사회에 던지는 뼈저린 경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낮에도 잔인무도한 범죄가 횡행하도록 내버려둔 이 나라 위정자들이 받아야 할 죄값을 우리 서연이가 대신 받았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범인들만이 아니라 정부도 져야 한다』는 최씨의 울부짖음은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하고 있는 정부당국은 물론,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도 자기 일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경구와도 같은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치안력의 확보다. 대낮 국도상에서 선량한 시민 일가족이 무고하게 집단 생매장당하는 치안부재의 책임은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한다.
더구나 범인 3명은 한결같이 전과 6∼8범의 흉악범들이었고 수배­추적됐어야 할 도난차량을 이용,전국을 누비고 있지 않았던가.
졸지에 네 가족을 잃고 땅을 치는 최씨 부부의 억울함에 공감하는 우리의 경각심은 그것이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채 한달도 안된 기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공권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한 「전쟁」이 전혀 성과가 없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 달 동안 각종 범죄자 10만여 명을 검거,이중 3천여 명을 구속하고 기소중지자 18만명 가운데 5만∼6만명을 검거했다고 내세우는 치안당국의 발표도 믿기로 한다.
특히 이 기간중 주정차 단속으로 서울도심 자동차 소통이 크게 나아졌고,경찰관을 비롯한 일선 공무원들이 범인추적과 범죄예방풍토 조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방범이 잘되고 있다는 아파트에 떼강도가 들어 거금을 뺐고 대낮에 은행을 찾아 현금을 바꾸려는 대담성은 「전쟁」 수행태세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과시적 방법만으로 방범은 되지 않는다. 「전쟁」상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연양 일가를 끔찍하게 집단살해하고 은행에까지 강도가 출몰하는 상황을 놓고 정부당국은 「전쟁방식」을 중간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턱대고 동원인력이나 늘리고,형량이나 늘린다고 범죄가 퇴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부당국은 눈을 돌려야 한다. 이번 서연양 일가족 참사를 통해 우리는 전과자 관리와 차량이용범죄에 「특단의 조치」가 있기를 이미 촉구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는 「범죄경보」체제 도입도 제안했었다. 이에 대해서 근원적 흉악범 퇴치는 범국민적 시민운동에서 싹트지 않으면 안된다.
서연양 부모는 14일 장례식에서 「우리들의 서연이의 넋을 기리며」라는 글을 통해 『서연이의 죽음을 그냥 한 개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남게 해서는 안됩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세상,죄악의 어둠만 깔려 있는 이 세상에 서연이는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외침을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데서 일가족의 참사가 던진 충격의 참뜻을 찾아야 한다.
『이 나라에 제2,제3의 서연이가 더이상 죄악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헤아려주시고 대통령이 그 무덤 위에 꽃 한 송이를 꽂아 서연이가 남긴 메시지를 지워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호소했다. 서연양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흉악범을 추방하는 시민운동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