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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김하성 이어 신준우·김휘집까지…히어로즈 유격수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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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신준우.

키움 신준우.

2008년 출범한 키움 히어로즈는 역사는 짧지만, 걸출한 유격수 계보를 지니고 있다. 창단 초기에는 강정호가 허리를 지켰고, 뒤이어서는 김하성이 내야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둘은 시간을 두고 나란히 메이저리거로 성장해 키움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렇게 국가대표 유격수를 둘이나 배출한 키움은 최근 들어서도 촉망받는 유망주들을 길러냈다. 2020년 입단한 신준우와 지난해 데뷔한 김휘집이 그 주인공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둘은 키움 유니폼을 입자마자 가능성을 드러내면서 미래를 밝혔다. 최근 10년간 9차례나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탄탄한 유격수 라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준급 야전사령관들의 존재도 정상 등극이라는 마지막 결실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처럼, 한국시리즈(KS)만 되면 유격수 자리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곤 했다. 키움이 유독 KS 우승과 연이 없는 이유도 여기 숨어있다.

악연의 시작점은 키움의 전신인 넥센이 자리하던 201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넥센은 창단 후 처음 맞는 KS 진출이라는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가세가 기운 현대 유니콘스의 쇠퇴기를 경험한 이들로선 다시금 왕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플레이오프(PO)에서 LG 트윈스를 꺾고 올라온 당시 넥센은 전력상 우위라고 평가받던 삼성 라이온즈와 대등하게 싸웠다. 4차전까지 2승2패로 맞닥뜨리며 삼성을 압박했다. 그리고 맞이한 운명의 5차전. 넥센은 4차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막판까지 1-0으로 앞서갔다. 이 경기만 잡는다면 첫 번째 KS 우승까지 1승만이 남는 터라 넥센 선수들의 표정에는 흥분감이 흘러 넘쳤다.

그런데 승리를 눈앞으로 둔 9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뼈아픈 실책이 나왔다. 주전 유격수 강정호가 야마이코 나바로의 평범한 땅볼을 처리하지 못했다. 소위 ‘알까기’ 미스였다.

이때부터 경기 흐름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무리 손승락이 흔들리면서 채태인에게 안타를 내줬고, 이어진 1사 1, 3루에서 최형우에게 2타점 우전 2루타를 맞아 1-2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넥센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쉽게 그라운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결정적인 실수를 한 강정호의 낯빛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5차전 패배는 KS의 향방을 갈랐다. 넥센은 충격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6차전에서 1-11로 져 삼성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만 봐야 했다.

구단명이 키움으로 바뀐 2019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번에도 유격수 실책이 화근이 됐다. 당사자만 강정호에서 김하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두산 베어스와의 KS 1차전에서 키움은 6-6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9회 김하성이 선두타자 박건우 타석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낙구 지점을 전혀 포착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공이 글러브 뒤로 떨어졌다.

이 미스는 또다시 끝내기 패배의 빌미가 됐다. 5년 전처럼 어수선한 상황을 맞은 키움 마무리 오주원은 결국 안타와 볼넷 등을 연거푸 허용해 1사 만루로 몰렸고, 오재일에게 끝내기 중전안타를 맞았다. 1차전에서부터 수비가 무너진 키움은 이어진 경기에서도 계속해 아쉬운 수비가 나오면서 4전 전패로 KS를 마쳤다.

강정호와 김하성으로 이어진 유격수 실책 악연은 올해 SSG 랜더스와의 KS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3차전에선 1-0으로 앞서던 김휘집이 최정의 땅볼을 1루로 악송구했고, 뒤이어 후안 라가레스의 역전 2점홈런이 나오면서 키움은 2-8로 졌다.

승부의 분수령으로 꼽히던 5차전에서도 뼈아픈 미스가 나왔다. 이번에는 신준우가 4-0으로 앞선 8회 최지훈의 땅볼을 흘렸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이 1사 1루 위기로 뒤바뀐 상황. 마무리 김재웅은 흔들렸고, 최정에게 좌월 2점홈런을 맞았다. 이어 키움은 9회 김강민에게 끝내기 3점홈런을 허용하면서 결국 4-5로 졌다.

2014년부터 2019년 그리고 2022년까지. 영웅 군단이 자랑하는 유격수들의 결정적 실책으로 키움은 KS 악몽을 쉽사리 지워내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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