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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에 술주정, 이어령엔 시 권유…81세 시인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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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종해 시인의 자택 서재에는 조병화 시인이 써준 글씨 ‘일일일생일망(一日一生一忘)’이 걸려 있다. 하루에 하나씩의 (생겨나는) 번뇌를 잊는다는 뜻이다. [사진 북레시피]

김종해 시인의 자택 서재에는 조병화 시인이 써준 글씨 ‘일일일생일망(一日一生一忘)’이 걸려 있다. 하루에 하나씩의 (생겨나는) 번뇌를 잊는다는 뜻이다. [사진 북레시피]

평생 시만 써온 81세 시인이 생애 첫 산문집을 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김종해 시인이 최근 펴낸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북레시피·사진)다.

한국시인협회장 지낸 김종해 시인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펴내

시인은 1963년 월간 자유문학 신인문학상(당선작 ‘저녁’)을 받으며 등단했으나 같은 해 8월 잡지가 폐간되면서 활동 무대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내란’)로 재등단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열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지만, 산문집은 한번도 내지 않았다. 시인은 시로 말할 뿐이란 지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인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가 “아버지의 짧은 글들에 남아 있는 한국 현대 시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며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산문집을 내게 됐다. 그동안 신문이나 문예지에 발표했던 글들을 빠짐없이 모았다. 이번 산문집을 위해 새로 글을 써 보태지는 않았다고 한다.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산문집에 등장하는 일화의 주인공들은 박목월·조지훈·박남수 같은 사람들이다. 1941년생인 김종해 시인에겐 한 세대 선배뻘 되는 시인들이다.

당시 기준으로 까마득한 후배가 겪은 선배들 혹은 선생님들 이야기인 셈이다. 술깨나 마신다고 자부하던 시인은 딱 한 번 취해서 박목월 시인에게 대들었다고 한다. “목월 선생, 할 말 있소!”하고 소리를 친 뒤 기억을 잃었는데, 다음날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박목월 시인으로부터 “그래, 닌 술을 고거밖에 못 마시나, 우째 그래 주량이 작노?”라는 애정 어린 답변을 들은 일화는 책에 여러 번 등장한다.

시인에 따르면 고 이어령 선생이 시를 쓰게 된 것도 그의 권유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문학세계사 출판사에서 2008년 8월 출간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가 고 이어령 선생 생전의 유일한 시집이다.

산문집은 생전 각별했던 동생 고 김종철(1947~2014) 시인, 정서의 뿌리인 어머니, 어린 시절 부산 생활 등 시인의 지금을 만든 세월과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뤘다.

시인은 지금도 매일 오전 4시 40분에 일어난다. 8시 40분이면 서울 마포구 신수동 출판사 사무실로 출근해, 온종일 시에 대해 생각하다 퇴근한단다.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를 ‘술시’라 부르며 이른 저녁과 반주를 빼먹지 않을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김씨는 “동생(김종철 시인), 큰아들(김요일 시인)과 함께 시인으로 사는 인생은 복 받은 인생이었다. 지금도 나에겐 시가 전부”라며 “내년쯤 시집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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