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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이태원은 잘못이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2호 31면

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대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쯤이었다. 말로만 듣던 이태원을 친구 따라서 생전 처음 놀러 가게 됐다. ‘젊은이들의 거리’로 불리는 온갖 서울 시내는 서울 토박이로서 모두 섭렵했다고 자부심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태원만큼은 예외였다. 지하철을 타면 집과 불과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지만 TV 방송과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 들으며 생긴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발길이 닿지 않던 동네였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이야기 배경인 고담시티가 서울에 있다면 이태원으로 바로 떠올리기에 십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긴 이태원 문화는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옆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과도 얼마든지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됐고 어떤 옷을 입어도 개성으로 서로를 존중했다. 손님은 왕이 아니라 식당 에티켓을 준수해야 하는 방문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지역이지만 가장 한국적이지 않은 동네가 바로 이태원이었던 셈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수사관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수사관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후 이태원은 주요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지역이 됐다. 유명 연예인의 맛집 식당들로 대중에게 점차 알려지고 경리단길은 유명해지면서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과 같이 전국의 ‘-리단길’을 유행시켰다. 상권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날 때도, 코로나19로 인한 낙인 논란이 불거질 때도 사람들의 시선은 이태원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많은 부침을 겪은 동네가 서울에 또 있을까. 이 굴곡의 서사를 옆에서 온전히 지켜본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쉽게 짐작도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이태원이 국내외 소식에서 언급된 지 어느새 일주일이 흘렀다. 목숨을 잃은 이들과 유가족에 대한 애도가 미처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태원이 이번 사고로 또다시 공격과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 등에선 이태원을 두고 ‘사람이 죽은 동네’ ‘사람을 죽게 만든 동네’ ‘자식을 놀러 가게 둬선 안 되는 동네’라는 식의 혐오성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동산 재테크와 소상공인 온라인 모임에선 참사를 계기로 ‘투자하지 말아야 할 지역 1위’로 이태원을 꼽기도 한다. 다른 일각에선 이태원 참사냐 10·29 참사냐, 참사냐 사고냐 등에 대한 논쟁도 제기된다. 이에 20년 가까이 이태원에서 생활해 왔다던 방송인 안선영씨는 SNS를 통해 “이태원이 집이자 소중한 삶의 터전이고 어쩌면 온 가족 생계가 걸린 가게를 운영하며 성실하게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쉽게 낙인 찍고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태원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천천히 되짚어보자. 이태원이 어떤 잘못을 했나. 이태원은 늘 그렇듯 주말 장사에서 손님을 기다렸고 연례 이벤트를 맞이한 것밖엔 없다. 그저 참사와 사고가 이태원에서 발생했을 뿐이다. 이태원은 잘못한 게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역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게 아니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 사회 공동체가 겪은 트라우마 치유, 지역 사회 복원 등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숙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때다. “애들 밥 한 끼는 먹여야지”라고 울부짖으며 제사상을 차린 지역 상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이태원에 대한 조롱과 거짓 정보는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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