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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점령한 매대·입간판, 홍대·강남 골목도 이태원 판박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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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 좁은 골목길에 차량과 사람이 뒤섞여 이동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 좁은 골목길에 차량과 사람이 뒤섞여 이동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아라.’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156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서울의 홍대 앞과 종로구 익선동, 강남역 인근 뒷골목 등에 대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5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건물을 신축할 때 4m 이상의 도로 확보가 의무화됐지만 종로와 홍대 앞 등 구도심에는 법 개정 이전에 만들어진 폭 4m 미만의 도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에 입간판과 가게 매대 등이 보행 흐름을 방해하는 곳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언제든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고밀도 위험지구’ 개념을 도입해 밀집 위험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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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대 앞 어울림마당로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30일 홍대 앞 상황을 전했다. A씨 가게는 홍대 앞 ‘메인 스트리트’로 불리는 어울림마당로와 홍익로3길 사이에 있다. A씨는 “골목마다 사람이 가득해 가게 벽에 붙은 소화전에도 사람이 걸려 불편을 호소할 정도였다”고 했다.

근처 다른 골목길에도 도로 한쪽에 매대를 내놓은 곳이 적지 않았다. 이창훈 기자

근처 다른 골목길에도 도로 한쪽에 매대를 내놓은 곳이 적지 않았다. 이창훈 기자

A씨가 지목한 홍익로3길은 폭 2m에 불과한 한 방향 도로로 각종 술집과 식당, 사주·타로 카페와 옷가게 등이 몰려 있다. 가게에서 내놓은 입간판과 밖으로 꺼내놓은 매대가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차와 매대 사이로 아슬하게 걸어갔다. 어울마당로를 중심으로 뻗어 있는 잔다리로6길, 와우산로21길 등도 상황이 비슷했다. 비교적 넓은 도로인 어울마당로에는 상인들이 설치한 매대가 도로 한쪽을 1m가량 차지하고 있었다.

몇 년 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도 주말마다 좁은 골목길이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가뜩이나 좁은 길에는 에어컨 실외기와 고객 대기를 위한 의자, 간판 등이 자리 잡아 보행 흐름을 방해했다. 익선동에서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한 B씨는 “행사할 때는 손님들이 다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도심이 형성된 지 오래됐으면서 상업시설이 밀집한 곳이 골목길 안전의 취약지대로 꼽힌다. 서울시가 2017년에 발표한 ‘서울형 골목길 재생 기본 계획 수립 용역’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424개 동 중 4m 미만의 골목길이 있는 동은 67.4%(286개 동)에 달했다. 서울시는 2018년 ‘골목길 재생사업’을 추진하며 폭 4m 이하의 골목길 보행 환경 개선에 집중했다. 서울시는 사업지 46곳을 지정, 도로 폭을 확대할 수 없는 곳에는 안전 난간과 미끄럼 방지 시설,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태원과 홍대 주변처럼 상업지구의 골목길은 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구도심의 도로 면적과 밀도, 유동인구 흐름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고밀도 위험지구’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태원처럼 사람이 많이 몰릴 수 있는 곳은 ‘고밀도 위험지구’로 분류해 통행 안전과 미끄럼 방지, 경사도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길도 좁고 굽은 구도심의 골목길은 밀도 계산과 통행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위성 항공 사진과 CCTV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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