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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덮쳤는데 美 노동시장 굳건…'Fed 피벗' 더 어려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대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대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테이블에 앉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계산이 더 복잡하게 됐다. Fed의 고강도 금리 인상에도 미 노동 시장이 탄탄해서다.

높은 수준의 노동 수요는 곧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기 둔화 우려 속 물가 압력이 커지면 긴축의 속도나 수위 조절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시장에서 기대하는 ‘Fed 피벗(pivot·입장 선회)’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노동부가 1일(현지시간) 공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9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계절조정)는 1072만건으로, 지난 8월(1028만건)보다 44만건 늘었다. 이는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985만건)를 훌쩍 넘었다.

당초 전문가들은 고강도 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데 따른 경기 침체로 기업의 노동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지만,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팬데믹 거치며 강해진 노동시장…인플레 압력 여전

미국의 구인 건수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초기였던 2020년 4월에 471만건으로 급감하며 2014년 11월(484만건)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반면 당시 실업자 수는 2304만명을 기록하는 등 노동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구인 건수가 실업자 수를 역전한 뒤 노동 수요는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통화 긴축 기조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에도 노동 시장이 약해지지 않은 건 그동안 미국의 경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데다 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데 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은 북미 제조업 생산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폈는데, 이 정책의 효과로 노동 수요가 증가했다”며 “반면 팬데믹에 노동자 한 사람이 기꺼이 일하려는 시간이 줄어들고 이민도 감소하는 등 노동 공급은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Fed가 주목하는 지표인 구직자 1명당 구인 건수 비율도 지난 8월 1.7명에서 지난 9월 1.9명으로 올라섰다. 9월 자발적 퇴직자는 410만명으로, 15개월 연속 400만명을 웃돌았다. 통상적으로 자발적 퇴직자는 더 나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클 때 늘어난다. 같은 달 실업률도 8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한 3.5%를 기록했다.

노동 시장이 굳건하다는 사실 자체는 경기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기업의 추가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9월 미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982년 이후 최대폭인 6.6% 상승했다. 오는 10일 발표되는 10월 CPI 상승률도 크게 꺾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플레와의 전쟁’을 선언한 Fed로서는 피벗을 위한 퇴로가 점점 틀어막히는 것이다.

‘피벗’ 기대감 낮아지며 뉴욕증시 3대 지표도 ↓ 

뉴욕증시. AP=연합뉴스

뉴욕증시. AP=연합뉴스

피벗 기대감이 점차 사라지면서 미 증시도 크게 출렁거렸다. 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 지수는 전날보다 0.24% 하락한 3만 2653.2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전날보다 0.41%, 나스닥 지수는 0.89%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美 전문가들도 엇갈리는 전망…중간선거 변수도

일련의 경제 지표를 보면 Fed가 기존의 긴축 모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역시 말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다. 노동 시장의 강세에도 미 주택 가격이 내려가고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하는 등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시그널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도 Fed가 이번 11월 FOMC에선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확신하지만,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는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연합뉴스]

미국 내 전문가들의 전망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이앤 스웡크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과열된) 경제를 식히려는 것이지 꽝꽝 얼어붙은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번 회의에서 Fed는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정하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Fed 선임 고문 출신 엘런 미드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도 "0.5%포인트 인상은 빠르고, 0.75%포인트 인상은 더 빠르다”면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8일 미국 중간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따른 정치권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셰러드 브라운 상원의원은 지난달 제롬 파월 Fed 의장에게 기준금리 인상이 고용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같은 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금리 인상이 고용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반면 도이체방크와 UBS,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증권 등은 Fed의 고강도 금리 인상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봤다. 매슈 루제티 도이체방크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물가 상승률이 계속 예상보다 높다면 최고 금리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마크 헤펠레 UBS 전략가도 “공식적인 물가 상승세가 잡히기 전까지는 Fed의 금리 인상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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