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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부산비엔날레, 화가 오우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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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1938년생, 이름은 오우암. 많은 이들에게 이름이 낯선 화가입니다. ‘2022 부산비엔날레’가 지난 9월 3일 개막해 오는 6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데요, 오우암은 그곳에서 만난 특별한 화가입니다. 낯선 듯, 친근한 듯, 현실인 듯, 꿈인 듯 모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에 “퇴직하고 나이 육십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작가 이야기가 겹쳐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의 작가입니다.

1945년 해방을 축하하는 마을 풍경이 담긴 그의 그림 ‘아이들의 해방’(2000, 부산시립미술관 소장)을 볼까요. 한 화면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학교 건물 앞에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 농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구경꾼이 대거 등장합니다. ‘굴렁쇠’를 직접 본 경험이 없는 세대엔 ‘아버지의 시대’를 증언하는 특별한 그림입니다.

오우암, 무당골, 1997, 캔버스에 유채, 41x53㎝. [사진 부산비엔날레]

오우암, 무당골, 1997, 캔버스에 유채, 41x53㎝. [사진 부산비엔날레]

오우암, 유년시절, 2000, 캔버스에 유채, 90.5x116.5cm.[사진 부산비엔날레]

오우암, 유년시절, 2000, 캔버스에 유채, 90.5x116.5cm.[사진 부산비엔날레]

오우암, 아이들의 해방, 2000, 캔버스에 유채, 181x227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사진 부산비엔날레]

오우암, 아이들의 해방, 2000, 캔버스에 유채, 181x227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사진 부산비엔날레]

‘실향’(연도 미상)이란 제목의 그림엔 황톳빛 배경에 목발을 짚은 상이군인 옆으로 한 부부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피란길에 나선 모습이, ‘통학생’(2002)엔 검정 교복을 입고 시골길을 걷는 남녀 중고생 무리가 보입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인력거꾼들을 그린 ‘기다림’(2010), ‘직업소개소’(2006)에도 요즘 세대엔 낯선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전라도에서 유년기를 보낸 작가는 현재 경남 함양에 살고 있는데요, 전후 50년 이상 부산에서 산 그의 그림엔 영도 앞바다, 범일동 구름다리, 깡깡이 마을 등 시대의 변화를 겪어온 부산이 담겨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50대 후반에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보일러공과 운전사로 30년간 일하고 퇴직한 그는 당시 미대에 다니던 딸(오소영 작가)이 쓰던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쓰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지요. 그동안 그의 머릿속에만 있던 기억 속 한국전쟁 전후 풍경은 그렇게 하나씩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풍경화도, 추상화도 아닙니다. 오히려 잡지 속 삽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디테일 표현을 생략하고, 단조로운 선과 색조로 묘사됐지만, 작가가 목도한 격변의 시대와 공간이 오롯이 담겨 있어 특별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만의 그림이 주는 감동입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 아래 5개국 출신 작가 64개 팀 80명이 참여한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이번 주말 막을 내립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올해 제목은 격변 속에서도 도도하게 흘러온 역사와 삶을 은유하는데요,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1층 전시장의 오우암 그림 27점도 그 도도한 물결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가을바람이 많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오우암 그림을 비롯해 초량과 부산항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즐길 날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