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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 이은해 무기징역…법원 "부작위 살인이나 영구격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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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가 4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가 4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처음부터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목적과 계획적인 범행 의도 아래 피해자에 대한 구호의무를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거나 구호의무를 이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만들어 사고사로 위장했다. 작위에 의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것과 규범적으로 동일한 가치가 있어 그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

 27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이규훈)는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가평 용소계곡에서 벌어진 ‘계곡 살인사건’에 대한 1심 법원의 결론이었다. 재판장이 두 사람에 대한 양형 이유를 설명하자 방청석에선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재판부는 또 형 집행 종료 후 각각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라고 명령했다. 검찰이 지난달 30일 결심 공판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또 각각 5년간 보호관찰과 함께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을 명령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대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작위에 의한 살인은 불인정 

 검찰은 애초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중형을 선고받도록 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의한 살인’이라는 새로운 이론 구성을 시도했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경우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상황은 ‘부작위’라고 하는데,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진 않았고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지만 “작위 살인에 준하는 비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씨 등이 피해자 윤모씨가 자신들의 요구를 쉽게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가스라이팅’을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윤씨가 이씨 등에게 거액을 제공한 뒤에도 자신을 자책하거나 이씨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왔다는 점을 조밀하게 제시했고 윤씨가 구호 장비 없이 물속으로 뛰어내린 것이 그 연속된 결과라는 걸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윤씨가 자신의 생명·신체에 위협적인 요구까지 순응할 정도로 심리적 지배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봤다. 이씨 등과 윤씨가 주고받은 메신저 기록, 윤씨가 쓴 글,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윤씨가 자신이 싫다면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상태였다고 본 것이다. “수영을 못하는 윤씨가 구호 장비 없이 높은 바위 위에서 뛰어내릴 땐 죽을 생각이나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보단 조씨 등을 믿고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윤씨는 생전 생계곤란에 시달리면서도 이은해씨의 지속된 송금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사진 윤씨 유족

윤씨는 생전 생계곤란에 시달리면서도 이은해씨의 지속된 송금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사진 윤씨 유족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씨 등이 윤씨를 물속에 빠진 채로 그대로 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 행위라고 봤다. 이 재판장은 “이씨 등이 윤씨를 살해한 행위는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부작위지만 직접 살인과 유사”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 등의 죄질이 작위에 의한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살인 범행은 일반적인 부작위범의 형태와 다르다”며 “선행행위로 인한 법적 작위의무를 가지고 있는 피고인들이 윤씨의 사망을 예견하고도 그걸 용인하고 방관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씨 등이 처음부터 윤씨를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으로 구조하지 않거나 구조를 한 것처럼 위장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재판장은 “피고인들은 두 차례의 살해 시도가 모두 실패했는데도 단념하지 않고 피해자를 계곡으로 데려가 바위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도록 유도하고 구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방치해 결국 살해했다”며 “피해자에 대한 계획적 살인 범행을 수차례 공모, 실행하면서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피해자의 생명 보험금(8억원)을 청구함으로써 그 범행 계획을 완성하고 경제적 이익까지 취득하고자 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 등이 2019년 2월과 5월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시도한 두건의 살인미수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살인 혐의의 죄질을 판단하는데도 고려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 등이 범행 직후부터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공유해 적극적으로 범행을 은폐하려고 했고 불리한 상황이 되자 검찰 조사를 앞두고 도주해 장기간 수사의 지연과 혼란을 초래했다”며 “법정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유족들이 엄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씨에 대해 “범행 동기와 목적, 구체적인 행위를 볼 때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살해 시도를 계속했을 것이 분명하다”며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계획적 살인 범행을 저질러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씨 측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 측 변호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판결문을 확인한 뒤 항소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계곡살인 검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계곡살인 검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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